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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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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인휘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관계학 석사,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현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탈냉전사의 인식> 등이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1년을 맞아 그동안의 대외정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일부 의견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탈냉전 20여 년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북한의 도발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국정 운영 전반에 걸친 다른 분야의 정책과 비교하여 대북정책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평가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는 엄중히 대처하면서도 북한에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점, 북한의 위기 고조 전략에 우리 국민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적인 위기관리 능력을 보인 점, 우리의 대북정책을 국제사회에 잘 설명하고 지지를 이끌어낸 점 등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높은 평가의 주요 배경으로 판단된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이다. 신뢰 프로세스는 과거 정부가 추진한 다양한 대북정책의 교훈을 계승하되 과거와는 달리 남북관계에 가치 지향적인 ‘신뢰 형성’을 추진하겠다는 매우 창의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 다수와 국제사회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공감하면서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광범위한 지지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2013년 하반기를 넘어서면서 북한의 일탈적 행동이 다시 가시화되고, 이산가족 상봉 약속이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는가 하면, 특히 최근 발생한 장성택 숙청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서는 과연 북한을 상대로 신뢰를 쌓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일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사이에, 또한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 합의된 수많은 약속과 선언들이 결국 이행되지 못한 데에는 ‘신뢰’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목표의식과 전략적 접근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최근 북한이 보여온 일련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신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북한의 행동이 비이성적일수록 또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엄중할수록, 남북한 사이에 신뢰의 가치를 쌓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과 11월 25일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과의 간담회를 통해 통일을 위한 우리의 숙명적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진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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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8일 국회에서 2014년 예산안 정부 시정연설 중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진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혔다.

짐작컨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의 기조와 관련 정책 내용이 만들어질 때 북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다양한 위기 시나리오들이 충분히 예견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상황에서는 추진 가능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추진 불가능한, 제한적인 실천 역량을 가지는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큰 평화는 결국 무수히 많은 작고 다양한 평화의 축적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신뢰 프로세스 역시 다양한 위기와 국면들을 헤쳐나가면서 정책 내용이 진화하고 국내외적 공감대도 더욱더 넓혀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최근 북한으로부터 감지되는 일련의 정치권력의 재조정 및 재분배 과정은 매우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장성택 숙청이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 사회가 보인 일종의 극단적인 반인권적 모습은 남북한 사이의 이질감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인시켜주었으며, 또한 북한 사회의 변화라는 우리의 목표가 얼마나 험난한 과제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 정확한 판단과 진단이 어렵지만, 대체로 장성택의 제거는 북한에 기대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개혁·개방 정책의 입지를 더욱 좁히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판단키 어려우나,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 역시 일시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이러한 한반도 위기 상황이야말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설정한 핵심적인 대북정책 내용이 필요한 시점임을 깨닫게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핵심 내용인 ‘신뢰’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뢰가 아니라, 한반도적인 안보 환경의 특수성이 반영된 ‘전략적인 차원의 신뢰’라는 점이다.

이러한 신뢰의 가치는 ‘프로세스’적인 접근을 통해 실천되어야 한다고 예고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목표 지향적’이거나 혹은 ‘성과 지향적’인 접근이 아니라,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로세스’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두 번째 핵심 내용인 ‘균형정책’의 경우,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잘 설명된 바와 같이 ‘안보’와 ‘교류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스탠스의 유지를 의미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북한은 안보와 억지력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교류와 협력의 대상이다.

과거 정부들의 대북정책에서 교훈을 되새겨보자면, 안보의 측면을 강조해서 남북관계를 일관되게 경색 국면으로 몰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동시에 교류의 측면만을 강조해서 북한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눈감아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남북한 문제 둘러싼 국제공조 체제 유지돼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관계가 가지고 있는 바로 이러한 양면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이러한 양면성의 위험에 빠지지 않고, 이를 대북정책의 내용에 충분히 녹아들게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2013년 한 해 동안의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북한의 핵실험, 일방적인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개성공단 재개 합의, 이산가족 상봉 무산 등과 같이 실로 다양하고 또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무수히 발생하였다. 이처럼 일관성과 논리가 결여된 북한의 대외정책 속에서도 한반도의 위기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한반도 안보 상황이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처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가지는 ‘균형정책’적 측면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북한의 내부 상황과 대외 행동에 절대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욕심을 내어, 일거에 많은 성과를 내고자 하는 욕심에서 과욕에 찬 대북정책의 목표를 설정할 필요도 없지만, 또 북한과는 어떠한 진정한 합의도 도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신뢰를 쌓는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회의감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하나씩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남북관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차츰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북한 사회의 변화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논리와 토대가 정당화되고, 또한 정책 추진을 위한 지지 기반이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부분은 최근과 같이 북한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북한 문제를 둘러싼 국제공조 체제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박근혜정부가 등장한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또한 국제공조 체제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은 인정된다.

2013년 한 해 동안 유지된 이러한 한반도 문제에서의 국제공조 체제는 2014년은 물론이고 향후에도 공고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2013년 하반기를 넘어서면서 북한은 우리 정부를 향한 비난 공세를 다시 높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건 없는 6자회담의 재개’를 매우 강한 어조로 주장한 바 있는데, 한편 중국 역시 북핵 문제 논의를 위한 ‘6자회담’의 재개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한미동맹의 경우 매우 굳건한 국제공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진정성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데도 한미 양국 사이에 매우 효율적이고 제도적인 협력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향후 우리 정부의 더욱 정교한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우리 국민 모두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대북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일거해 해결해줄 수 있는 대북정책 역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또 북한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접근할 수 있는 대북정책은 존재할 수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바로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대북정책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위기에 더욱 강해지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고 위태롭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설정한 최초의 문제의식과 목표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2013년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 속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신뢰 프로세스가 2014년엔 더욱 큰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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