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호 > 통일칼럼
통일칼럼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성택의 처형 이후 북한은 일단 겉으로는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성택 일당’에 대한 후속 숙청이 예상되었으나, 측근들로 알려진 인물들 대부분이 김정일 추모 2주기 때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이틀 만에 마식령스키장 공사장 등 현지지도에 나섰다. 김정은은 밝은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모든 것이 정상인 듯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의 북한에서 김정일 사망 이후의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느낌이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은 애도기간을 최단기간에 끝내고 초고속으로 김정은 후계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정은이 말을 타고, 놀이기구를 타는 등 상중(喪中)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행동을 하며 심지어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두 경우에서 북한의 메시지는 김정은이 권력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으며 애도나 공포 분위기를 털어버리고 정상 분위기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주민들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활동에 매진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권력 2인자의 반당, 반혁명, 종파 사건의 여진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숙청은 진행되고 있을 것이며, 북한 스스로 대외관계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미중 경쟁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안정은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 대외무역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매년 50만 톤의 중유와 생필품을 제공하며 정치, 군사, 외교적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중국은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 여부와 북한과의 관계 설정을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불안정과 도발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며, 이는 동맹과 파트너십의 강화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도와주는 셈이 된다.
장성택이 석탄 등 귀중한 지하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고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했다고 북한이 적시한 것은 의도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더라도 향후 북중 경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기존의 가격보다 석탄 가격을 더 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대중국 수출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게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은 북한의 핵무기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국은 김정은 정권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김정일이 물려준 권력 핵심구조의 조기 해체, 군 고위직의 빈번한 교체, 경제난의 지속, 미국과의 마찰, 남북관계의 경색 등은 북한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이유들이다.
오늘날 중국이 북한 생존의 절대적 후원자가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인 2008년부터이다. 냉전 종식 초기만 해도 한중 수교 여파로 북중관계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으며, 2000년 김정일의 방중까지 냉랭한 관계가 계속되었다. 중국은 동북아 질서 속에서 북한을 보고 있으며, 장성택의 숙청을 계기로 중국의 계산이 복잡해질 것이다. 북중관계가 기로에 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