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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 한반도 정세

한반도 정세

2014년 동북아 질서 재편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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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상 초계기와 이지스함인 율곡이이함이 12월 2일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 상공과 해역에서 ‘이어도 해역 기동 경비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1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을 유발했다.
센카쿠(댜오위댜오)와 이어도 상공에 걸치는 광범위한 영역에 경계를 설정하면서 한·미·일 3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어 북한의 장성택 실각이라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3년은 한반도와 동북아 상황이 예측 불가능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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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재성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
외교부 핵 안보정상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한 해 동북아 모든 국가들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변화가 예고된 바 있다. 과연 예상과 다르지 않게 2013년은 많은 사건들로 얼룩진 한 해였다.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으로 포문을 열더니 격렬한 대남 도발 위협이 잇따랐고, 이어 최룡해의 베이징 방문으로 시작된 북중 간의 숨가쁜 외교가 펼쳐졌다.

지난 6월엔 미국과 중국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의 ‘신형대국관계’의 출범을 알렸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에서 함께 걷는 모습은 동북아의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희망적인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점증하는 중일 간의 영토분쟁은 동북아의 평화가 쉽지 않음을 일깨워주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 현상이 맞물리는 무대가 아시아다. 아직 전 지구적 강대국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중국과 역동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지역을 토대로 패권 부활을 추구하는 미국이 전략적 협력과 경쟁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무대가 아시아이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안정적인 아시아가 필요하고, 미국은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고 역동적인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세력으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동북아 미래 이끄는 동력은 미중관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G2의 한 축의 지위를 얻은 중국은 미국에 도전해보았지만 본격적인 경쟁을 위해서는 당분간 경제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미국 역시 막대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면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신형대국관계는 미중 양국이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가운데 상호 이익을 도모한다는 원칙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추구해나가는 잠정적 상호 양해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불거진 방공식별구역 논란은 미중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핵심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재균형전략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동맹 유지라는 전제하에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 3국을 방문한 바이든 미 부통령은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일 간의 의도치 않은 충돌을 막기 위해 중일 양국의 갈등 해결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미중 신형협력관계 수립과 동맹 유지라는 두 개의 원칙이 상충될 때 미국은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신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무릅쓰면서까지 동중국해에서 핵심이익을 추구할 수는 없으므로 점차 일본과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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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월 6일 청와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미중 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과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갈등 사안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양국 모두 개별 이슈에서 충돌하여 관계 악화를 무릅쓸 여유가 없으므로 게임의 양상은 문제 해결의 토대가 되는 원칙과 규범에서 자국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규범게임, 혹은 게임을 위한 게임, 즉 메타게임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시진핑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이 점차 우위를 점해간다면 마침내 미국은 2020년대에 본격적인 경쟁의 게임으로 돌입할 수도 있다.

중국이 근대 국제질서에 진입하면서 겪은 백 년간의 고난을 이겨내고 과거 중화 질서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중화의 꿈을 꾸고 있다면,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의 질곡을 떨치고 보통국가, 군사강대국이 되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부상하는 가운데 일본은 군사력 강화의 논리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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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직후인 11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산둥성의 한 부대를 방문해 사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심각한 재정적자와 국방비 삭감의 와중에 있는 미국 역시 일본의 우경화 자체를 환영할 수는 없지만 군사적 보통국가 노력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에도 중일 양국은 경제적 상호 의존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미래의 경쟁과 갈등을 예상하며 군비 경쟁을 계속하고 영유권 분쟁과 같은 제로섬 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동북아 전체가 급변하는 세력균형 속에서 자신의 안위에만 온통 몰두하여 자기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 북한이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정권의 내부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12월의 미사일 실험과 2013년 2월의 핵실험, 4월까지 지속된 대남 도발은 일관된 대외전략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내부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北, 핵무력 건설과 경제 건설의 양면 전략 공식화

북한은 핵실험의 대외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타이밍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이후 대남 도발을 통해서도 협상의 우위를 점한다거나 협상카드를 극대화하는 등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한 채 도발 국면을 마무리지었다. 북한은 3월 31일 소위 핵·경제 병진전략을 제시하면서 핵무력 건설과 경제건설의 양면 전략을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최룡해의 중국 방문 이후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강력히 요구하자 이후 병진전략을 추구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간헐적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내부 정치상황에 좌우되어 일관된 정책을 결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지속된 미사일, 핵 실험에 대해 주변국들과 국제사회는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무역, 금융, 사치품 등에서 일관되고 협력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증가시켜왔다.

한국 역시 5·24조치로 북한에 대한 경제교류 및 신규 투자를 제한하면서 북한은 중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에서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북한이 병진전략을 야심차게 내세우면서도 비핵화를 요구하는 중국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북 경제제재가 간접적이긴 하지만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성택의 숙청으로 권력 기반을 다진 김정은 정권은 통치의 합리성과 성과를 보이기 위해 경제 건설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외부로부터의 자원 투입 없이는 경제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자원 유치를 위해서는 핵 포기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14개의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마식령스키장 등 무기 관련 경제제재가 직접 적용되지 않는 부분에서 경제 성과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대북 제재와 상충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강조되는 강대국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맺으면서 북한 비핵화를 중요한 선도 이슈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 개발을 무작정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친중파 장성택을 숙청하는 등 북한의 국내 정치상황의 향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북 경제 지원은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중국은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중국의 성의를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요 사안에 대한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주변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북 협상에서 수차례 배반당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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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월 27일 사이타마현의 육상자위대 훈련기지에서 욱일승천기를 바라보고 있다.

다자협력을 위한 외교적 노력 기울여야

미국은 지난 2·29 합의를 일방적으로 위반한 북한이 확실한 선행동을 보이기 전에 6자회담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중국과 북한은 우선적으로 대화를 재개하여 문제를 풀어가자는 입장이지만, 이미 수차례 6자회담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의무사항 이행을 도외시한 북한을 미국이 또다시 믿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 개최를 위해 성의 있는 행동을 하도록 독려하겠지만, 복잡한 내부 정치상황으로 일관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기 어려운 김정은 정권이 과연 6자회담 재개를 포함한 장기적 대외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미중 신형관계가 얼마나 유지될지, 중일 간의 갈등은 어느 시점까지 군사적 대결로 이어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전략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동북아 강대국들이 힘에 근거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각박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에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다자협력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북핵 및 북한 문제는 1993년 발생 이래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성격 자체가 변화되어왔다. 앞으로는 미중 간의 경쟁의 틀 속에서 문제가 규정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고, 비핵화는 추구하지만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로 유지하려는 고려 역시 중·장기적인 대미 경쟁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을 원한다면 미중 관계 속의 한반도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은 미중 간의 전략적 불신을 완화하기 위해 개별 사안들에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중견국으로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통일 한반도의 의미와 향후의 공헌을 주변국들에게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이 본격적인 경쟁 상태에 돌입하면 할수록 한국의 전략적 입지는 줄어들 것이기에 한국은 더욱 서둘러 북한 문제 해결과 지역 경쟁구도의 완화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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