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호 > 성공시대
성공시대 / 채경희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삼정학교 교장
림일 탈북 작가
함박눈이 펑펑 내린 지난 12월 중순 어느 날, 서울시 구로동 46번지에 위치한 ‘삼정학교’를 찾았다. 현대식 32층 빌딩의 1, 2층에 들어선 학교는 교통으로 보나 주변 환경으로 보나 최상의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전국에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10여 곳이 있지만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활발히 운영되는 학교다.
이 학교를 운영하는 채경희 교장은 탈북자 출신의 교육자다. 1992년 함경북도 청진 제1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회령의 고등중학교 수학교사로 8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 딸에 그 엄마라고 인민학교(남한의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모친이 정년퇴직을 한 후 가난한 생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는 한 많은 북한 정권에 과감히 등을 돌렸다.
지난 2003년 가을,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입국해 탈북자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 안에 있는 ‘하나둘학교’에서 5년간 근무한 그녀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탈북청소년들 중에는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어서 고아가 되어 남한에 들어온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된 초등교육을 받기는 만무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중국이나 제3국 출생의 어린이도 적지 않았다. 한글 자음 ‘가나다라’도 겨우 발음하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편입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적 위주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력 미달로 받는 탈북청소년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통일을 위해 탈북청소년 교육이 꼭 필요함을 느꼈고, 생전의 황장엽 선생과 탈북 지식인들, 남한의 교육·종교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0년 11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삼정학교를 설립했다.
처음 3명의 입학생으로 시작했고 다음 날 5명으로, 5일 후 11명으로 늘어나는 등 학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현재는 정원인 50명을 초과했으며 학생들이 입학을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채 교장은 교육의 대상을 현재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 단계적으로 넓히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삼정’은 지덕체 구비 교육을 표방하는 학교의 브랜드다. ‘지덕체’는 지식을 의미하는 ‘지’, 도덕을 의미하는 ‘덕’, 그리고 체육을 의미하는 ‘체’를 말하는 것으로 공부와 인성, 체력을 골고루 갖춘 학생이 되자는 뜻이다. 이 세 가지가 빛나도록 바르게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채경희 교장의 야무진 꿈이다.
가정의 보살핌을 대체하는 양육 프로그램 실시
삼정학교는 눈높이 맞춤형 교육에 초점을 맞춰 정상적인 제도권 교육과 더불어 학력 보충 및 생활교육을 동시에 하는 기숙형 대안학교다. 학생들은 오전에는 인근의 일반학교에서 남한 학생들과 똑같은 정규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이곳에서 특별수업을 받는다. 등·하교 걱정이 없으며, 주말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려간다.
채 교장은 11명의 직원 중 6명을 교사 출신의 탈북자로 채용했다. 모두 여성들인 그들은 중국에 몇 년씩 체류한 경력이 있어 중국어 실력이 제법 있다. 그것이 유효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자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매우 적절했다. 또한 북한에서 받았던 생활교육을 서서히 남한의 문화로 바꾸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오전에는 일반학교의 남한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삼정학교의 북한 출신 선생님에게서 특별수업을 받는다. 학생들의 생활과 식사를 담당하는 사감 선생님도 탈북자 출신이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삼정학교는 현재 1개 교육관, 3개 기숙사를 통하여 가정의 보살핌을 대체하는 양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아이들의 화목한 생활을 도모하고 있다. 4개의 교실과 컴퓨터실, 미술실, 체력단련실, 외국어실, 도서실 등 그룹활동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학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종합과외 교육인 영어, 컴퓨터, 음악, 체육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유적지 답사, 농촌 체험 등 정기적인 현장 체험학습을 통해 남한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친다.
삼정학교는 100% 교회와 기업, 개인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민간 후원형 학교다.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뛰어다니는 후원자들이 없다면 학교를 운영해나갈 수 없다. 단돈 만 원의 후원을 받아도 “감사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 ‘의리파’ 채 교장의 업무 스타일과 교직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학교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올해 44세 미혼인 채경희 교장의 얼굴에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넘쳐보였다. 거기에 어머니 같은 섬세함과 따뜻함이 가득했고, 내일에 대한 더 큰 희망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교장실도 따로 없이 교무실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그녀에게서 소박함과 검소함이 몸에 밴 그녀의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수첩을 접으며 물었다.
“결혼은 안 하십니까?”
“했어요. 우리 아이들과….”
수학이 전공인 그녀는 삼정학교에서 이공계와 예체능에 특별한 소질을 가진 인재가 양성되어 제2의 이소연, 김연아 같은 훌륭한 인재들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채 교장은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세상에 던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