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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 남북관계 대토론회

남북관계 대토론회

“북, 남한 정부 변화할 때까지
공격적인 방어 자세 이어갈 것”
대북정책에 영향력 큰 미중관계 중요성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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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4 통일·대북정책 과제와 방향’을 주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현경대 수석부의장이 개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2014년 통일·대북정책 과제와 방향’을 주제로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고 알리기 위해 열린 이번 토론회는 통일을 위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김철중 동아일보 기자

지난 12월 6일 제주도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논의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공동으로 ‘2014년 통일·대북정책 과제와 방향’을 주제로 ‘남북관계 전문가 및 언론인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대토론회는 12월 3일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 소식이 전해진 뒤 북한의 내부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열려 향후 한반도 정세를 예견해보는 자리가 되었다. 민주평통 관계자는 “학계 전문가들이 각자의 의견만을 펼치는 일반적인 세미나와는 다르다. 열띤 토론을 통해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고 알리기 위한 자리이다. 이번에는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하는 언론인들도 대거 참석해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대토론회는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전문가들이 남북통일과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머리를 맞대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푸른빛의 제주 앞바다와 맑게 갠 하늘이 참석자들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방기성 제주 행정부지사는 환영사에서 “통일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행사를 제주도에서 치르게 돼 영광”이라면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처럼 평화롭고, 모두가 행복한 통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구상은 주변국으로부터 표면적 지지를 얻어냈지만,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과거 정부에 비해 ‘균형’ 잡힌 정책의 틀을 보여줘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에게 기대 섞인 관망을 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평화통일 의지 잃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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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일·대북정책 대토론회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와 언론인들.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 취소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쉽사리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개회 인사말을 통해 “일제 식민지로부터 광복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큰 성취를 이뤄왔다”고 말했다. 현 수석부의장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예로 들었다. 당시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데다 정치권의 반대도 매우 컸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도로를 뚫고 공장을 지었고, 결국 그것이 산업화의 첫걸음이 됐습니다. 최근 동북아 정세가 만만치 않죠. 하지만 국내외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결국 우리를 단련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겁니다.”

지난 1년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현 수석부의장은 “이번 정부는 국정 4대 기조 중의 하나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내세웠다. 역대 정부들이 통일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통일을 국정기조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2013년 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통일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부가 주변국들에게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점을 높이 샀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모두 31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며 대북정책 공조와 세일즈 외교에 힘을 쏟았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과 모두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현 수석부의장은 “통일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민주평통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은 박찬봉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맡았다. 통일 문제, 국제정세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하지만 통일부에서 약 30년간 근무하면서 느낀 현장 경험과 전문 지식을 적절히 섞어 ‘통일의 제도화’란 주제로 연설을 진행했다.

“지금까지는 남과 북의 교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아도 계속 만나고 도와주면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통합 과정을 돌이켜보면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던 것처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박 사무처장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다가도 한순간 다시 후퇴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 중 어느 한 쪽이 규칙을 위반하면 페널티(벌칙)를 받고,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 할 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과 언론인들의 토론은 2개의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한 명의 발표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발제를 한 뒤 나머지 참석자들이 발표자의 발언과 주제에 대해 의견과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발전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박 연구위원은 “2013년은 박근혜정부의 대외·대북정책에 대한 ‘허니문’ 또는 테스트 과정이었고, 2014년에는 각자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끝내고 본 게임에 들어서는 시기”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2013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구상은 주변국으로부터 표면적 지지를 얻어냈지만,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과거 정부에 비해 ‘균형’ 잡힌 정책의 틀을 보여줘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에게 기대 섞인 관망을 하도록 했습니다.”

당장 2014년부터는 대북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4년에 주목해야 할 변수로 △6월 지방선거 전후로 한국의 정책 변화 △6자회담의 진행 여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방중 등을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은 개성공단 재개 협상에서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등의 카드로 우리 정부를 시험했으나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미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천명한 만큼 남한 정부가 변화할 때까지 공격적인 방어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안착했지만 2014년엔 성과 내야

대표 발제가 끝나자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발언이 이어졌다.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첫 포문을 열었다. 전 논설위원은 “장성택 숙청으로 김정은의 단독 권력에 대한 제어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북한의 핵 능력도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이념 대립,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한반도 상황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신뢰가 한중관계와 남북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다만 중국의 지지에는 ‘한국이 북한에게 좀 더 양보하고 아량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전제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형남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통일의 길에는 장성택 숙청, 북중관계 변화 같은 수많은 변수가 있다. 이때마다 수동적인 자세로 대처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예로 지지부진한 6자회담도 북미 양자회담 등 다른 접근법을 통해서라도 계기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도 이제 2014년이면 3년차에 접어듭니다. 장성택 숙청 등 김정은의 지난 행적을 감안하면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주도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입니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그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주변국들로부터 많은 견제와 간섭을 받아왔다. 20세기를 끝으로 냉전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여전히 복잡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매우 긴밀해졌지만 정치와 안보 측면에서는 갈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두고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날 대토론회의 두 번째 세션은 ‘미중관계와 한반도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역시 동북아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탈냉전 이후 전 세계에 12개 정도의 지역안보질서가 작동하는데 그중 동북아는 ‘강대국 정치의 투영’이 가장 두드러진 곳입니다. 정치제도, 역사적 배경 등에서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국가들 사이에 차별성이 큰 지역이죠. 최근 20년간 국가들 간에 모순적 공존이 심화됐고, 북핵 문제가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북한 변화 이끌어낼 구체적인 실천전략 필요

박 교수는 동북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중관계가 한국의 통일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는 “미중관계가 건설적이고 안정적일 때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의 공간이 커진다”고 말했다. 즉, 통일 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이 생긴다는 의미다.
다른 참가자들도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중관계가 중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했다. 다만 중국의 부상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차이가 났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게 있어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의 군사력, 핵 보유 현황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할 때 여전히 미중은 G2가 아닌 G1.5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교수는 “중국이 지난 수년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거론해왔고, ADIZ 선포 이전에도 7, 8년 전부터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놓고 한국과 갈등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자신들의 영향력 확장에 강한 의지를 계속 내비치는 만큼 한·미·일의 공동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정치에서는 결국 힘의 논리가 작동하며 강대국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필요한 전략적 판단과 협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인센티브가 있어야 행동을 하게 마련”이라며 “적어도 동북아 내에서는 한국이 경제 분야를 통해 한미, 한중 간의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이 그동안 치중했던 양자관계보다는 역내 또는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하는 다자관계를 더 늘려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특정국가와의 양자관계가 어렵다고 한다면 제3국과 함께하는 삼각구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면서 “얼마 전 정부가 남·북·러 철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것처럼 다양한 역학구도를 만들고 상호 협력과 견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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