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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 이슈

이슈 /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행보

김정은 ‘유일 영도’ 강화 위해
군사적 긴장 조성 나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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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1년 12월 28일 열린 김정일 영결식에서 김정은 바로 뒤에 장성택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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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자체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장성택이 언젠가는 권력 핵심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은 있어왔지만 그의 숙청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우리의 놀라움은 더욱 크다. 장성택의 처형 방식 또한 우리를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장성택은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고모부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웠기에 잔혹한 처형으로 그의 권력이 박탈될 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최소한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명예롭게 퇴진시키거나 면직 정도로 그의 곁을 떠나게 하는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장성택을 당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12월 8일)하고 불과 4일 만에 국가안전보위부 군사재판을 통해 반인륜적인 처형을 단행했다. 그것도 북한 정권은 장성택을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처단했다. 현재 북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죄상을 모조리 장성택에게 덮어씌워 그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다. 몸서리쳐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장성택을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처형 단행

장성택의 숙청으로 북한의 변화에 약간의 기대를 걸었던 희망 또한 사라진 듯하다. 장성택은 북한 내에서 상대적으로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온건 인물로 알려져왔다. 북한의 실질적인 개혁·개방을 이끌 인물로도 평가받아오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장성택이 중국의 등소평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평가도 있을 정도였다. 북한의 경제특구사업, 북중 경협과 외화벌이 사업에서도 장성택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제 장성택과 같은 온건 인물이 사라진 북한에는 이리 떼와 같은 잔혹성을 가진 강성 인물들이 판을 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한편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국방위 제1 위원장 김정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의 지도활동을 재개했다. 12월 16일에는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북한군 ‘장병들의 맹세모임’을 개최해 이들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서 김정은을 ‘단결과 영도의 유일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결사옹위’하는 북한군 장병들의 맹세가 나왔다. 이튿날인 17일 김정일 2주기 중앙추모대회가 평양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김정일 추모행사는 연례행사로서 작년 이맘때도 똑같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김정은의 유일 영도자, 즉 ‘수령 즉위식’같이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이 대회의 구호와 추모사는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로 채워졌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주체혁명의 영도자로 높이 모시어”, “김정은 두리(둘레)에 철통으로 뭉쳐 당중앙을 목숨으로 결사옹위하는 투사”가 될 것을 맹세하였는가 하면,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도 “그 어떤 천지풍파 속에서도 오직 최고사령관 동지만을 받들어나갈 것”이라는 충성 다짐을 하였다.

형식 면에서도 유일 영도자 ‘수령 즉위식’ 흔적이 곳곳에 배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김경희의 불참이었다. 1차 추모행사 때 주석단 앞좌석에 앉았던 고모 김경희가 보이지 않았다. 주석단에는 김정은을 업어 키웠다는 고모 김경희뿐만 아니라 고모부 장성택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분명 최고영도자로서 김정은의 ‘유일성’을 부각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성택과 김경희가 행사에 나타날 경우 김정은 권력의 ‘유일성’은 크게 희석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평양의 하늘에 ‘하나의 태양’만이 뜨도록 한 것은 유일 권력 유지를 위해 계획된 특단의 조치임에 분명하다. 물론 김정은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 제1위원장, 최고사령관 등 당, 국가, 군대의 최고위직에 등극하면서부터 최고지도자로 군림해왔다.

그렇지만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과 고모 김경희에게 업혀 있는 ‘어린 권력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어린 권력자’ 딱지도 떼고 ‘업힌 권력자’ 딱지도 떼내어 김정은이 더 이상 업혀 있는 치기 어린 권력자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유일 권력자’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어린 권력자’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부인 이설주를 내세웠고, 장성택을 처형했으며, 고모 김경희를 서서히 커튼 뒤로 물러나 있게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일 권력 지키려 잔인성·근엄함 서툴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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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12월 13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장성택 처형을 알리는 TV 화면을 보고 있다.

실제로 장성택은 김정은의 유일 권력을 위해 희생양이 되었다 할 수 있다. 김정은은 갖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장성택을 처형하는 반인륜적인 잔혹함을 보였다. 이때부터 김정은은 천의 얼굴을 가진 ‘유일 독재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2월 17일 중앙추모대회에서 김정은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찡그린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은 추모식에서 흔히 보일 수 있는 비통함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근엄함도 아니었다. 유일 독재자로서의 잔혹함과 근엄함을 서툴게 연출하고 있는 풋내기 지도자로 비춰졌다. 누군가가 아직까지 김정은을 강력한 독재자로 만드는 연출을 맡고 있지만 지나치게 급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문자 그대로 급조되고 있는 권력은 우리에게 그만큼 위험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현재 김정은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우려스럽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정은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조언처럼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모부까지 처형하는 잔혹함을 마다않는 군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여 김정은은 그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하고 비범한 업적을 위해 갖은 무리수를 둘 수 있는 군주가 되고자 하는 측면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4, 5월 김정은이 전쟁 위협 놀음을 벌인 것도 자기 스스로의 군사 지휘능력에 대한 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할 것이다. 동시에 이같이 급조된 ‘유일 권력’의 경직성으로 인해 북한 정권이 쉽게 붕괴될 수 있는 만큼, 급변사태 초래 가능성 또한 높아 우리의 걱정을 한층 더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12월 17일 유일 권력자로서의 ‘즉위식’을 마친 이후 김정은은 그의 유일 영도 권력의 강대성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군사적 수단을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 권력이 나름대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군사적 수단 외에는 없다.

북한은 2013년 초부터 서해와 동해 최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사거리가 확장된 개량형 240mm 장사정포를 배치하였고, 하반기에는 4군단 예하 도서 포병부대에 122mm 방사포 50~60여 문을 배치하였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한 태탄 비행장에는 특수부대 병력을 태우고 저고도 침투가 가능한 MI-2 헬기 수십 대를 전개해놓았다. 방어적 차원에서 백령도와 연평도 북방 월내도와 무도, 대수압도 등에서는 포병부대 병력이 이동하는 교통로와 포진지에 덮개를 설치하여 한국군 공격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작업도 벌였다. 김정은은 서해 도서를 3차례나 시찰할 정도로 ‘서해 해상 화약고 만들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대대적 숙정작업·서해상 군사 도발 예상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을 미루어보면 김정은이 군사력 시위가 필요할 때 서해 해상을 이용할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강화하는 움직임까지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영변 핵단지에 있는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장거리 미사일 엔진 실험까지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5MW 원자로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기지에서 장거리 미사일 엔진 연소실험에 사용된 로켓 추진체는 장거리 로켓(은하 3호) 개량형 또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초에 김정은은 이 같은 군사적 준비태세를 적극 활용해 군사적 시위를 벌임으로써 그의 유일 권력의 강대성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은 장성택의 숙청을 계기로 체제 정화를 위한 대대적인 숙정작업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내부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단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서해 해상에서의 군사적 재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조성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2월 17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방부가 밝히고 있는 도발 유형은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육해공군을 동원한 국지도발,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사이버 테러 등이다. 이 중에서 김정은이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위한 준비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한미 당국을 긴장시키는 방법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은 그들의 군사적 위력을 우리에게 확실히 인식시킨 후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제의를 해올 가능성도 있다. 북한 당국은 군사적으로 남한을 완전히 제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하고자 하는 헤게모니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한 군사력 강화로 남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비현실적인 대남관계 개선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상대인 남한의 의지와는 지극히 상반된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조치가 지속되거나 강화되면 될수록 남한의 적극적인 대북 교류협력 의지는 반감될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는 한 남한의 적극적인 대북 지원이나 교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2014년의 남북관계는 더욱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고도화되고 과학화된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 역량에 기초한 우리의 전방위적인 대비태세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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