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와 북한의 경제 동향
북한은 핵·경제 병진에서
‘핵 우선, 경제 다음’으로 돌아섰다
북한의 국가경제와 인민경제는 분리돼 있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 시장에 의해 돌아가는 인민경제는 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군수와 연계된 국가경제는 버티지 못한다. 이는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올 연초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으로 유엔과 국제사회는 3월부터, 과거보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고 이행에 들어갔다. 미국은 6월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라 북한을 자금 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이 미국과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수백만 인권을 유린한 혐의로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조치가 김정은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압박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도하기에는 어느 정도 효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유학했던 스위스도 자국 내 북한 관련 자산을 동결하고 기존 은행 계좌를 폐쇄하는 등 독자 제재조치를 취했다. 유럽연합(EU)도 북한 항공기와 선박의 EU 역내 통과와 기착, 기항을 금지하는 새로운 제재조치를 마련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적인 독자 제재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나 충실히 이행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대북 제재 이행으로 북한 국적 및 원양해운관리회사 소속의 선박이 억류되는 한편 싱가포르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에서는 북한을 비자 면제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방법으로 파견근로자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고용계약 갱신을 불허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도 북한 노동자를 추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 4월 이후 핵탄두 운반로켓인 중거리미사일(4월 15일, 6월 22일, 7월 19일, 8월 3일, 9월 5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4월 23일, 7월 9일, 8월 24일)을 8회 연속 발사한 데 이어, 9월 9일에는 5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핵탄두의 표준화, 규격화를 이뤄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와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핵 개발은 먼저, 경제 개발은 뒤에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집권한 김정은 정권의 경제적 환경은 아버지가 집권할 때보다 양호했다. 김정일이 등극한 1994년은 대외적으로는 핵 문제와 사회주의권의 붕괴, 대내적으로는 경제난과 그에 따른 주민 이탈 등으로 정권 붕괴에 앞서 국가 붕괴가 우려되는 시기였다. 김정일은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해 국가 발전노선을 ‘경제·국방 병진’에서 ‘국방공업 우선’으로 전환하고, 경제부문 투자에 앞서 국방공업에 우선 투자를 통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했다.
반면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전쟁 억제와 방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핵과 미사일 같은 ‘혁명유산’을 넘겨받았으나 집권 초기엔 경제 건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장성택 숙청과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 기반의 공고화, 당의 유일영도체계 확립, 당과 내각의 역할 부각 등은 경제 건설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김정은에게도 2400만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켜야 할 엄중한 과제가 제기되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첫 육성 연설에서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인 6월 기업과 협동농장에 자율성을 대폭 부여한 ‘신경제관리방법’을 제시하고 1년간 시범운영을 통해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 ‘포전담당책임제’로 정식화하고 전면인 실시 방침을 제시했다.
이러한 제한적 내부 개혁과 함께 2013년 5월에는 대외 개방을 위한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11월에 13개의 경제개발구를, 2014년 7월에 6개의 경제개발구를 선포하는 등 경제 개발을 통한 경제 회생에 노력을 기울였다. 금강산국제관광특구를 원산과 벨트로 묶어 ‘원산금강산국제관광특구’로 확대했고 2015년 2개의 경제개발구를 추가적으로 발표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경제 개발을 통한 경제 회생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다. 김정은의 아이콘은 ‘경제 개발’이었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나이가 어린 그는 어리석게도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국가 발전전략으로 채택했다. 핵 개발을 하면서도 경제 문제에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4년간 경제 개발을 외치고 외쳤으나 진전된 것이 없다.
결국 김정은은 경제와 핵 개발 동시 추진은 절대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7차 당대회를 통해 겉으로는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노선으로 강조했지만, 사실은 ‘경제보다 핵 개발을 우선하도록’ 정책 방향을 바꾸기에 이른다. 김정은의 ‘선 핵무력 건설, 후 경제 건설’ 정책은 노동당 7차대회에서 제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노동당대회에서 ‘인민경제발전 계획’을 제시했다. 따라서 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국가경제발전 전략’은 매우 이례적이다. 계획과 전략이 어떤 차이가 있기에 북한은 계획이 아닌 전략을 제시한 것일까?
북한에서 계획은 숫자로 표현되며 법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전략은 숫자가 아닌 선언에 불과하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전략은 숫자가 아닌 기본과업이고 법적 성격을 갖지 않지만, 계획은 숫자로 제시되며 법적 성격을 가진 국가의 법적 과제다. 무조건 수행해야 할 당의 지령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계획은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되기 때문에 전략의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북한이 노동당 7차대회에서 경제 목표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할 것으로 예측했다. 김정은의 아이콘이 경제 개발이었고 2011년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경제 개발도 계획도 아닌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이 집권 초기 경제개발구법 제정 등 외자 유치를 위한 노력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외자 유치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당 대회에서 경제 개발을 유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책임관리제를 비롯한 내부 개혁과 국산화 강조,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아닌 자강력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식 경제 붕괴해도 北 주민 생활은 영향 적어
북한이 7년도, 10년도 아닌 5년을 기한으로 전략을 제시한 것은 대북 제재 속에서 수행 불가능한 경제 문제는 유보하고 핵무기를 단기간에 완성한 후 경제 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 선회로 보인다. 김정은은 노동당 7차대회에서 정치·군사 강국의 공고화와 함께 핵무기의 질량적인 강화를 강조했다.
이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를 소형화·경량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도, 북한은 조롱하듯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빈도를 높이고 있다. 전술한 것처럼 북한은 이미 대북 제재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우려를 감안한 경제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그러나 대외무역 약화에 따른 시장의 영향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주민생활 악화 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대북 제재 초기 단계다. 일부에서는 초기에 강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점차 그 효율성이 약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제재에 동참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대북 제재 초기인 4~7월 북·중 무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7.3%, 북한의 무연탄 수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24.4% 감소했다. 중국의 수입금지 품목인 금광석의 대중 수출은 중국 상무부가 금수조치 세부 품목을 발표한 4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6월에는 마이너스 100%를 기록했다.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북·중 무역은 지난 3개월 동안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이 외에도 북한이 우회로로 선택하고 있는 봉사무역, 기술무역 부분인 인력 송출도 여건이 악화되면서 외화 수입의 축소도 예견되고 있다.
9월 현재 북한의 시장 물가는 다소 오름세를 보인다. 지난 4월 대북 제재 초기의 시장 쌀가격은 1kg당 평균 5073원, 5월 4966원, 6월 4900원, 7월 5300원, 9월 5418원으로 4월보다 6.8%(약 400원) 올랐으나, 전년과 대비하면 4월(4666원)과 7월(5283원)을 제외하고 모두 지난해보다 다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년(6066원) 대비 올해 9월 쌀가격은 10.7% 낮은 수준이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9월 동안 1달러당 8200~8400원대에서 등락했는데, 올해도 8100~8400원대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올해 9월의 시장 환율(8216원)은 지난해(8260원)와 매우 유사한 수준이다.
올해의 시장 쌀가격과 환율 변화는 대북 제재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 시장의 쌀가격과 시장 환율은 지난해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년 동안 공고해진 북한의 시장이 그 어떤 외부적 요인과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북 제재의 목적과도 부합된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이례적으로 북한 주민은 겨냥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특히 민생과 관련한 품목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게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줄은 전면 차단하고,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살아갈 수 있도록 제재를 ‘투 트랙’으로 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북한의 공식 경제가 붕괴돼도 그것이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공식 경제를 통해 물자를 공급받거나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서 돈을 벌고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스스로’ 살아가고 있어 북한 당국이 시장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대북 제재 속에서도 지난 기간과 유사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북한의 공식 경제는 군수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화학공업 부문인데, 이 부문은 대북 제재가 지속된다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북 제재 초기 북한의 대외무역액 규모는 감소했지만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줄을 전면 차단하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나오게 하고 대북 제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북한으로 외화가 유입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외화 소득원 차단해야
북한으로 들어가는 외화를 어떻게 차단할 수 있을까? 북한은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보관하고 있던 2500만 달러와 대외무역으로 벌어들인 외화를 북한의 계좌 대신 개인 명의를 통해 거래했다. 외교행랑을 이용해 현금으로 북한으로 유입하는 등 불법적인 우회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북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화 소득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외화를 벌 수 있는 품목을 차단해 외화 수입을 감소시키고 수출을 통한 외화 유입도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는 추가 대북 제재를, 한·미·일은 독자 대북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실효성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에 모두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같은 강력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중국이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독자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영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북한 정준택원산경제대학 졸업. 2002년 탈북. 동국대 북한학 박사.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저서 <푸코와 북한사회 신체왜소의 정치경제학>, <탈북박사 부부가 새롭게 쓴 논문작성법(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