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재일동포 청년 모국방문 연수
짧은 만남, 긴 여운 ~
‘자이니치’들의
뿌리 찾기와 한반도 이해하기
분단과 한류, 한국과 일본, 전쟁과 평화를 2박3일간(9월 22~24일) 짧게 경험하는 재일동포 청년들의 모국 방문.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돌아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한국 전도사가 될 것인가.
역시 청년은 청년이었다. 착하고 건강하지만 의식은 치열하지 못하다.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명강사이지만 그래도 조는 이는 막기 어렵다. 3, 4대를 거치며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계는 국적을 불문하고 ‘자이니치(在日)’로 불린다. 이들을 담고 있는 그 유명한 조직 중 하나가 바로 ‘민단’이다. 유학이나 취업을 위해 최근에 일본에 간 이들은 ‘재일한국인’으로 불리는데 이들은자이니치와 섞이지 못한다.
연설 도중 유 부의장이 “내가 하는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이라고 물으니, 5%가량 손을 살짝 들었다. 이들은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한국어에 서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16 재일동포 청년 모국 방문 연수’는 전부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일부 청년들은 존 것이다. 유 수석부의장이 반응이 적은 그들을 향해 조크를 던졌다.
김정은이 총살시킨 북한 요인 9명을 거론한 뒤, “이 중에는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된 이도 있다. 서울에서는 몰라도 평양에서는 절대 졸면 안 된다”라고 한 것. 한국인 도우미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자이니치들은 반응이 없었다. 통역사가 순차 통역을 해주자 일부만 미소를 지었다. 아, 이들은 장성택도 모를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문외한이구나….
자이니치는 대일항쟁기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8·15광복 후 그대로 눌러 산 한국인이 뿌리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눠지자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남(南)을 택하면 ‘민단계’, 북을 고르면 ‘총련계’가 되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조선계’가 된 것이다. 1964년 대한민국이 일본과 수교하자 민단계는 한국 국적을 갖고 일본에서 계속 살 수 있는 특별영주권을 받았다. 한국 여권을 발급받아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로 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총련계와 조선계는 국적은 물론이고 영주권도 없으니 일본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이들을 상대로 그 유명한 ‘조총련 교포 모국 방문’을 추진해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에 오려면 한국 여권을 받아야 하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민단계가 되었다. 총련계는 물론이고 조선계도 와해돼간 것이다. 여권의 힘은 그렇게 강력했다.
지금 조총련은 ‘골수 종북’인 상부층만 남고 하부는 거의 다 무너졌다. 해외로 가고 싶은 골수 총련계는 일본에 귀화해 일본 여권을 받았다. 겉으로는 항일이지만 속으로는 친일의 길을 간 것이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남북 대립이 사라지자 이들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는지, ‘재일교포’에서 뽑아낸 ‘자이니치’를 그들의 대명사로 삼았다.
일본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을 ‘도래인(渡來人)’으로 부른다. 자이니치들은 일본을 거주지로 선택했기에 현대의 도래인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과감히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조총련을 동원해 장난을 치고 돈과 전략물자를 빨아들이려 한다. 일본에는 혐한류(嫌韓流)를 퍼뜨리는 우익이 적지 않다. 그것이 대한민국과 자이니치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다.
이를 제압하려면 재일한국인보다 훨씬 많은 자이니치를 묶어야 한다. 민단 청년회와 민주평통이 재일동포 청년 모국 연수를 추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 주도의 통일을 전파하는 전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유 수석부의장이 그들에게는 생소한 북한 현실을 강의한 것이다. 권태오 사무처장도 “여러분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의 지지와 단합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라는 엄중한 위기를 이겨내고 통일시대를 열어나가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뿌리를 찾으면 한국 전도사가 된다
한국을 알기 위해 이들은 비무장지대(DMZ)와 서울 인사동을 탐방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우리 군은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전방에서는 훈련하는 포병과 기동하는 전차를 쉽게 볼 수 있다. 무기는커녕 군인도 보기 어려운 일본에서 자란 이들의 눈에는 위장 크림을 칠하고 움직이는 국군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다.
고려대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어 한국어가 가능한 유영향(미에현 출신) 양은 “1자를 마크로 한 군인(1사단이라는 뜻)들이 쫙 깔려 있어 놀랐다. 하도 분위기가 엄중해 기대했던 판문점은 갈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외국인과 한국인, 현대와 과거가 어우러진 인사동에 갔으니 전쟁과 평화의 공존 공간을 본 것이다.
이들은 한국 대학생들과 반을 편성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어가 가능한 한국 학생들을 선발했기에 대화는 일어로 했다. 그런데 한반도를 아는 한국 학생들은 일어가 짧고, 일어를 하는 자이니치들은 한반도에 대해 아는 게 별로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찾아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에 돌아가면 한반도 뉴스를 볼 때마다 DMZ 기억이 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김정은을 없애고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인사동은 물론이고 ‘강남스타일’과 K-팝을 낳은 서울 강남의 활기도 잊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평통과 함께 이 행사를 주도한 민단 중앙본부의 박유식 청년회장은 “뿌리를 찾으면 그렇게 하나가 된다. 한국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