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역사유적지구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사랑이 서린 곳
백제(百濟)는 약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국가이다. 그런데도 흔히들 ‘잊혀진 왕국’이라 불린
다. 정확히 678년의 백제 역사 가운데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한성시대의 기록과 유물이 매우 드문 탓이다.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475년까지 무려 493년 동안이나 도읍이었던 한성에서는 백제 임금 31명 가운데 21명이 즉위했다. 반면에 통틀어서 200년도 안 되는 웅진시대(475~538년)와 사비시대(538~660년)에는 모두 10명의 임금이 배출됐다.
한성시대의 종말은 비참했다. 서기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 고구려군은 7일 밤낮을 공격해 백제한성을 함락시켰다. 개로왕은 한때 백제의 신하였던 고구려 장수 걸루와 만년에게 붙들려 참수됐다. 뒤늦게 신라 원군과 함께 달려온 문주는 폐허가 된 한성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천도했다.
금강 유역의 웅진, 오늘날의 공주에는 백제의 자취가 또렷하다. 그 대표적인 곳이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다. 이 두 곳과 부여의 관북리 유적(왕궁터), 부소산성·정림사지·능산리 고분군과 부여 나성(羅城), 그리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미륵사지 등 8곳의 백제 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는 2015년 7월 우리나라의 열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웅진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공주 공산성을 먼저 찾았다. 금강변의 나직한 산봉우리와 가파른 벼랑을 낀 포곡식 산성이다. 총 길이 2660m의 성곽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구불거리거나 오르내린다. 단순한 방어용 산성이 아니라 문주왕 원년(475)부터 성왕 16년(538)까지 5대에 걸친 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의 공산성에는 왕궁 터와 성안마을, 연못 등의 백제시대 자취가 또렷하다.
공산성 매표소에서 직선거리로 1km도 안 되는 곳에는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7개의 고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능묘는 무령왕릉이다. 백제 25대 무령왕과 그의 왕비가 묻힌 이 능은 1971년에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 전인미답의 상태였던 무령왕릉에서는 왕이 쓰던 금관(금제 관식), 귀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와 무기, 도자기류, 석수(石獸) 등을 비롯해 총 4600여 점의 귀중한 백제 유물이 출토됐다. 그중 지석과 금제 관식을 비롯한 12종, 17건은 국보로 지정됐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진품 유물들은 모두 근처에 위치한 국립공주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앞으로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물길을 따라 약 70리(28km)가량 하류로 내려가
면 부여 낙화암 아래를 지나게 된다. 백제 멸망 당시에 삼천궁녀가 몸을 날려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낙화암, 고란초라는 희귀식물의 서식지이자 ‘고란약수’로 유명한 고란사는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성(사적 제5호)에 있다.
부여 나성(羅城, 도읍 전체를 둘러싼 외성)의 일부이기도 한 부소산성은 사비시대(538~660)에 왕궁의 배후 산성이었다.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비상시에는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됐다고 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106m에 불과하지만 북쪽으로 백마강이 흐르고 있어서 외적을 방어하기에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오늘날의 부소산성에는 군량미, 군창터, 영일루, 반월루 등의 백제 유적이 남아 있거나 복원돼 있다.
부소산성의 서남쪽 기슭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은 사비시대의 백제왕궁 터이다. 동서로 35m, 남북으로 18.5m 길이의 대규모 건물 터를 비롯해 상수도시설, 저장시설, 연못 등의 유적이 발견됐다. 관북리 유적 남쪽에는 사비성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정림사지가 있다. 원형이 완벽하게 보존된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승전을 기념하는 내용의 글귀를 새겨놓기도 했다.
정림사지 후문에서 약 150m 거리에 국립부여박물관이 위치한다.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쯤은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이 향로는 백제의 공예와 미술 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 기술까지도 한눈에 보여주는 걸작
이다. 1993년 12월 12일 부여 나성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절터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됐다.
연꽃 향기 가득한 궁남지
둘러싼 나성의 동쪽 부분 바로 밖에 위치한다. 커다란 고분이 3기씩 두 줄로 늘어서 있고, 약 50m 떨어진 북쪽에 1기가 자리 잡았다. 이곳의 고분 7기 가운데 1호 무덤에는 사신도와 연꽃무늬, 구름무늬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유적은 아니지만, 여름철의 부여 여행에서는 궁남지(사적 제135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궁궐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20리 밖에서 끌어들였으며, 버드나무를 못 주변에 심고 가운데에는 방장선산을 본떠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현재 궁남지 주변에는 드넓은 연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여름철이면 흐드러지게 핀 연꽃 향기가 온 천지에 가득하다. 사실 이맘때쯤의 삼복염천에 부여를 찾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궁남지의 연꽃 구경이 목적이다. 매년 7월에 열리는 ‘부여 서동연꽃축제’에는 무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백제 무왕의 아명(兒名)인 ‘서동’이 들어가는 축제가 또 하나 있다. ‘익산서동축제’가 그것이다. 익산시 연동마을에는 서동의 생가 터가 있고, 익산시 석왕동의 쌍릉(사적 제87호)은 무왕과 왕비 선화공주의 무덤이라고 한다. <삼국유>에는 무왕과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천 년이 넘도록 절터를 지키는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다. 원래는 같은 형태와 규모의 석탑 2기, 목탑 1기가 조성됐다지만, 지금은 근래 복원된 것을 포함해 석탑만 2개가 서 있다.
미륵사지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 유적은 무왕 당시의 백제 왕실이 수도인 사비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별궁 유적이다. 궁장(宮墻 : 궁궐에 둘러쳐진 담), 석축, 대형 건물, 공방, 사찰등의 터가 발굴되었다. 휑한 유적지를 홀로 지켜온 것은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다. 백제의 전통을 오롯이 계승한 고려 초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당당하면서도 날렵하고,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가 돋보인다. 말 없는 석탑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다.
여행 정보
안내전화
공주시 관광안내소(041-856-7700), 부여 관광안내소(041-830-2330), 능산리 고분군 매표소(041-830-2521), 왕궁리 유적전시관(063-859-4632), 미륵사지 유물전시관(063-290-6799)
숙식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1박2일로 둘러본다면 중간쯤에 위치한 부여에서 하룻밤 묵는 것이 적당하다. 롯데부여리조트(041-939-1000), 백제관광호텔(041-835-0870), 백마강레저파크(1833-8982) 등이 부여에 있다. 익산유스호스텔(063-850-2000)은 호텔 수준의 고급 객실을 갖춘 복합 숙박시설이다.
부여읍내 관북리 유적 앞의 백제의집(041-834-1212)은 연꽃 향기 그윽한 연잎밥 전문점이다. 익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황등비빔밥은 황등면 소재지의 진미식당(063-856-4422)과 시장비빔밥(063-858-6051)이 잘한다. 그 밖에 공주 공산성 부근의 새이학가든(국밥, 041-855-7080)과 부자떡집(전통 떡, 041-854-5454), 부여의 구드래돌쌈밥(041-836-0463), 나루터식당(장어구이, 041-835-315) 등도 소문난 맛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