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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 포커스

포커스 /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파장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파장 그 후
북한 인권법 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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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해 여름 라오스에서 9명의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강제 북송되는 사건이 있자 북한 인권단체 회원들이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어 이들의 안전을 기원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주도해 만든 북한 인권 관련 유엔총회 결의문 초안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직접 북한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촉구하는 등 유엔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강도 높은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2014년 3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1년 동안의 조사 결과를 제출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국제사회가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북한 체제 자체와 책임자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추궁하도록 촉구했다. 유엔이 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보고서를 마련하도록 결정한 것은,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서는 그간의 단순한 대화와 권고 차원을 넘어 처벌과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엄중한 인식의 전환이 있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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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월 24일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북한 인권 고위급 회담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탈북자 신동혁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케리 국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강제 수용소는 사악한 제도라며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공개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4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통해 북한 체제 자체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북한 정권의 책임자들이 개인적으로 반인도 범죄를 자행했으며, 국제형사재판소가 직접적으로 개인들의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굶주림과 기아로 인한 사망 등의 비극을 의도적으로 주민 통제를 위한 방법으로 사용해왔던 것도 정치적 집단살해 내지 반인도 범죄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의 반인도 범죄 행위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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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인권토론회에서 북한 수용소의 실상을 증언한 김혜숙(왼쪽) 씨와 정광일(오른쪽) 씨.

대화와 권고 대신 처벌과 제재로 북한 압박

최근 유엔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강도 높은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지만 그간의 사정을 돌아보면 놀랍기도 한 일이다. 현재 EU와 일본이 주도해 만든 유엔총회 결의문 초안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직접 북한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책임자 개인들에게 실효적인 맞춤형 제재를 가할 것을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비록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의 반대로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들이 있지만,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국제사회의 단죄가 필요하다는 규범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북한 인권 문제의 처리에서 중대한 변화를 뜻한다. 중국도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심각한 압박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자국의 인권 문제를 자각하거나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숨거나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변화는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15일 ‘조선인권연구협회’라는 단체가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자신들의 인권 개선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해 소위 북한식 인권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응해 북한판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도 하고 있다. 장기간 억류 중이던 미국인 피감자를 석방하는가 하면, 북한 내 수용소들에 대한 외부의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도발적 행동들과 함께 진행되어 혼란을 주고 있지만 남북한 간의 고위급대화도 추진할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고위급 인사들이 깜짝 방문을 하기도 했다.

물론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가 적대 세력들이 벌이는 ‘지상낙원’ 북한에 대한 불법한 정치적 공격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여전하다. 국제 보편규범인 인권을 놓고 북한은 북한식의 인권 기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법과 제도를 통해 인권이 잘 보장되어 있는데도 미국과 서방의 적대시 정책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거나, 우리 정부가 탈북자를 조종해 국제사회에 허위 증언을 시키고 수십만 장의 ‘삐라’를 살포하도록 하면서,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자청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일방적인 무시로 일관하던 북한이 자기변호에 적극 나선 것은 다름 아니라 소위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국제범죄자로 지명되고,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라는 구체적인 처벌 지침이 거론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으로 압력의 수준을 집중적으로 높여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권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 당국과 인권대화를 통한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정책적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조사위원회 보고서 역시 이러한 쌍방향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정책의 방향은 무엇인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일치된 의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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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인권토론회에서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 조사를 지휘했던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이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족 찾기를 신청한 약 13만 명의 이산가족들 중 절반 정도만 생존해 있고, 그중 절반은 이미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전면적 해결을 회피하고 단발성의 제한된 상봉 행사만을 고집해오고 있다. 보편적인 인권 및 인도주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정치적, 경제적 실리와 연결해 이산가족 상봉을 반대급부가 필요한 대가관계성의 협상 대상으로 삼아왔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그들의 신원과 행방을 알려주지 않아왔다.

소위 조용한 외교와 협상이나, 안보와 경제의 측면에서 대가를 제공하고 장기간에 걸쳐 부분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도 정책적 선택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효과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리 정부가 그동안 사용해왔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단 후 60여 년이 지나버린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인권 사안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방안들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인도 범죄로서 국제적인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 북한 내부의 인권침해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비인도성을 보이는 이산가족 문제도 더 이상 조용히 해결하는 것으로는 조속한 시일 내에 근본적인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관심을 가진 국가들 및 지역연합체, 보편적인 인권 진흥을 꾀하는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들과 협력해 남북한 양자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사안으로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먼저 문제들을 보편적인 국제 인권의 범주에서 적절히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 문제는 난민, 유민 내지 실향민, 이동의 자유, 가족으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권리, 반인도 범죄, 강제 실종과 자의적 구금 등의 국제 인권 이슈들과 적절히 연결해 정의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중국을 포함해 미국, 유럽 등 이해관계국들과 관련 집단들을 계속적으로 설득하고 정당한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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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한 유엔대표부의 김송 참사관(왼쪽)이 10월 23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인권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다.

인권정책은 분명한 목표와 시간계획을 갖춘 결과 도출형으로 만들고 이행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정치범수용소 철폐와 같은 우선적 과제들에 집중해 목표 중심적인 접근을 꾀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서 소위 급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선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리 준비되고 사전 합의된 원칙들이 있어야 북한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체제 이전 과정에서 정의(Justice)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북한에 급변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자행될 수 있는 대량의 인권침해(예를 들어 15만 명의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한 집단살해 행위) 발생 가능성과 인도주의 관련 사항들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준비와 고려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서 최악의 인권침해국 중 하나인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개선하는 일에서 우리 스스로가 일치된 의견을 정립하는 것이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아직까지 논쟁만을 벌이며 북한 인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유엔은 이미 북한 인권법 초안을 통해 기록보존소를 넘어서는 북한인권현장사무소의 설치를 결정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입법의 부재는 인권을 존중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입장에 배치된다.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로 비칠 우려도 있다.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 내 인권침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자의적인 처형 및 구금 폐지, 연좌제와 정치범 수용소의 철폐, 이동의 자유 보장과 기본적인 인간성의 회복과 같은 1차적인 현안들의 해소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 내의 인권침해는 더 이상 방치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나아가 국제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다분하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조속히, 그리고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올바른 정책과 제도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photo 홍성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과대학 및 대학원,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 아시아·태평양 위원, 아시아·태평양포럼 아시아법률가위원회 한국 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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