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호 > 북한 IN
북한 IN / 북한의 자율 경영제 도입과 변화의 바람
국가가 4할, 생산자가 6할을 가져가는 농업 개혁을 비롯해 생산, 판매, 가격, 임금 등을 기업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수익의 40%만 국가에 납부하는 기업 개혁 초지가 취해지는 등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자율 경영제 확대로 기업과 직업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3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분주한 것 같다. 그중에서 핵심은 경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취임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자”고 역설한 바 있다.
북한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경제적 업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기존 경제 시스템으로는 경제 회생이 쉽지 않다고 보고 주민들의 생활 향상을 명분으로 시장경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6·28방침’으로 일컬어진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이라는 파격적인 경제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북한의 경제 전문 학술지인 <경제연구> 2014년 2호는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강조하면서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은 자체의 구체적 실정과 특성에 맞게 자기 단위의 경영 활동을 창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4월 2일 “조선(북한)에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연구, 완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며 “작년 3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생산단위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벌여나가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서는 자율 경영제의 범위가 확대되고 파격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국가가 4할, 생산자가 6할 가져가는 농업 개혁
북한은 내년부터 모든 농장과 기업 등의 생산과 분배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자율 경영제를 전국적으로 확산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나름의 농업 및 경제 개혁 조치를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거 2001년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를 방문해 개혁·개방의 성과를 목격하고 ‘천지개벽’을 말하며 부러워했다. 그 이후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단행했으나 기득권 세력 등의 반발과 미온적인 태도, 체제 불안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해 결국 얼마 못 가 실패로 끝났다. 이후 간헐적으로 부분적인 개혁 조치를 시도했지만 성공한 것은 거의 없다.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들고 나온 자율 경영제 카드이므로 이번에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자율 경영제는 협동농장뿐만 아니라 공장, 기업소, 상점 등 모든 생산단위에서 적용된다. 가족 분조제 시행 초기에는 수확량의 30%는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했지만, 수확해야 할 기준을 미리 정해서 사실상 실패했다. 산성화된 토지에다 농기계도 없고 비료도 공급받지 못해 대부분의 농장에서 당국에 납부해야 할 분량조차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농업 개혁 조치는 협동농장의 경우 20~30명으로 구성된 분조 단위를 가족 단위 생산체제로 바꾸고, 가족 1명당 토지 1000평씩 나눠주기로 했다. 생산물의 분배도 국가가 4할을 가져가고, 나머지 6할은 생산자가 가져가는 방식이다. 노동자가 아닌 학생과 어린애도 가족 1명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5인 가족의 경우 5000평의 땅을 받아 농사를 짓고 거기서 나온 생산물의 60%를 개인이 활용할 수 있다. 일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만든 셈이다.
협동농장의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개인 텃밭 생산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도 공동 생산 시스템을 고집했던 북한 당국이 결국 ‘공동 생산’보다는 개인의 책임 아래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임을 인정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북한의 이런 조치가 중국이 1978년에 도입한 ‘가정연산승포책임제(Household Responsibility System)’와 유사하다고 전하면서, 성공할 경우 북한 국내총생산(GDP)이 연 7.5% 성장할 것으로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북한의 자율 경영 바람은 기업에서도 불고 있다. 계획 수립, 생산, 판매, 가격, 근로자 임금 등을 기업 독자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수익의 40%만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율 분배가 가능토록 했다. 이뿐만 아니다. 기업들은 중국 등 외국회사와 자유롭게 합영·합작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조선신보 4월 2일자에는 기업들이 “국가 계획을 벗어난 생산을 자체의 결심으로 조직하고 판매하여 종업원들의 보수, 복리후생 등도 자체의 실정에 맞게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자재 수입과 생산, 판매, 노동자 급여 지급과 복지 등 모든 경영권을 기업에 부여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자율 경영으로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노동자 임금이 치솟고 있다. 수익을 많이 낸 기업의 근로자는 매월 북한 돈으로 수십만 원을 가져간다고 한다. 지하자원을 중국에 수출하는 광산 노동자의 경우 북한 돈으로 평균 30만~4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야근이 많고 생산 실적이 높은 근로자들은 최고 8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능력 있는 기업의 노동자와 생산 실적이 낮은 기업 노동자 간의 월급 차이가 100배에서 200배까지 난다. 심지어 노동자가 당 간부보다 급여가 많아지면서 당 간부들이 돈 잘 버는 기업으로 전직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서는 자율 경영 시행지침을 인민반 회의와 공장 및 기업소 강연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고 한다. 자율 경영 체제의 실험기간이 끝나면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본격 실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개인농과 개인기업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북한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중국 기업인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는 요즘 농민들이 기대감에 들떠 있다고 한다. 그 기업인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내년부터는 각 농가에 토지 사용권이 부여되고, 개인이 직접 땅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면서 “북한 기업들도 내년부터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 등지에 나와 다양한 돈벌이 사업 협의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이런 조치는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사실상 ‘공동 생산, 공동 분배’라는 사회주의 계획 시스템을 탈피해 개인의 책임 생산 및 잉여 생산물 자유 처분이라는 새로운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변경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사실상 시장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경제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 개혁 조치는 북한의 양극화 문제를 야기하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됐다. 북·중 접경지역이나 평양에 부가 집중되면서 지역·계층 간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는 추세다. 자율 경영제 확대로 기업과 직업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조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렇더라도 북한에서 시장경제 제도가 걸음마를 떼면서 북한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250만 대 이상 보급된 휴대전화가 북한 사회 변화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휴대전화로 상인과 주민들은 시장 정보를 교환하고, 휴대전화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그동안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비난해왔던 다양한 서구식 생활방식과 패션도 소리 없이 뿌리 내리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햄버거 체인점 ‘삼대성’에 들러 시식하면서 북한에서 햄버거 같은 서구식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평양에 햄버거 가게가 속속 들어서고, 값비싼 가격에도 햄버거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주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피자,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고, 비엔나 커피숍도 개점했다. 귀고리를 하고 짧은 치마를 입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공공장소에서 청춘 남녀들이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신압록강대교 건설 후 경제 협력 변화 기대
김정은 체제 4년 차가 되는 2015년부터는 북한은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할 것이다. 새로운 경제정책을 시도하면서 경제적 성과를 내려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다시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 대외경제성 산하 원산지구개발총회사가 지난 9월 20일 중국 다롄에서 북한 투자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 10월 16에는 닷새 동안 중국 단둥에서 제3차 ‘북·중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가 열렸다. 북한은 무역회사들을 중심으로 총 68개 업체를 파견하고, 500여 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상품 전람회, 미술작품 전시회, 관광사진 전시회, 예술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주춤한 양국 관계를 반영하듯 올해 박람회는 예년에 비해 활기가 다소 떨어진 느낌이었다. 제1, 2회 박람회 때 각각 100여 개 북한 업체가 참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30%가량 줄어들었다. 박람회를 통해 북한은 중국 기업체 2000곳과 수출입 구매 상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 93건에 16억 달러 상당의 무역 투자 의향서가 체결됐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국을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거의 마무리됐다. 중국 정부가 3억5000만 달러의 공사비를 모두 부담해 총연장 3026m, 왕복 4차로의 대교를 건설한 것이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기존 압록강철교를 대체해 양국 간 물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착공했던 신압록강대교가 곧 개통될 예정이다. 당초 10월 말에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신의주 쪽의 공사가 부진해 개통 시일은 다소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개통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신의주를 중심으로 북·중 간 경제 협력 변화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견된다.
북한에 불고 있는 자율 경영 체제와 변화의 바람이 북한의 주민 생활 개선과 경제 회생에 얼마나 동력이 될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북한이 ‘우물 안 개구리식 변화’로는 경제 회생에 한계가 있다. 핵개발과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특권층을 위한 과시용 건설(마식령스키장, 문수물놀이장 등)에 재원을 퍼붓는 등의 ‘핵·경제 병진노선’으로는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외화 부족으로 원자재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북한이 독자적으로 경제 개혁 조치와 변화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신뢰를 갖고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북한 경제가 성장하는 지름길이다.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해서 앞으로 남북 간에 상생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도 통일 준비의 문을 활짝 열고 북한의 시장화가 촉진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의 수준이 개선되도록 적극적인 경제 협력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