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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 진단

진단 / 북한 고위급 방문 이후 남북관계

북한 고위급 방문 이후 남북관계
대화 물꼬 터져, 남북관계 진전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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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남북한 관계자들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 비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 3명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것은 남북 양측에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모처럼 터진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이냐다. 이제 남북한 갈등이 되풀이돼서는 안 되고 고위급 후속접촉 일정을 합의해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4일 북한의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 등 최고위급 인사 3명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북한 내 실질적인 ‘권력 3인방’인 이들의 전격 방문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내내 뉴스의 화제가 됐다. 특히 황 총정치국장의 한국 방문은 6·25전쟁 당시 박헌영 초대 총정치국장 이래 공식적으로 남한을 방문한 최초의 총정치국장이란 점에서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황 총정치국장 일행은 10월 4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찬 회담을 가졌고,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 말~11월 초에 하기로 합의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방문한 북측 인사들은 박근혜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임기를 통틀어서 최고위급인 데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3인이 한꺼번에 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3인의 방문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정부 들어 강대강(强對强) 대결 구도 속에서 경색일로이던 남북관계의 흐름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등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황 총정치국장이 군복 차림으로 방문한 것의 상징적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행보는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군복을 입은 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반영됐다는 적극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에 대해 최측근 인사를 통해 타진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최근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을 방문해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 북한의 활발한 외교 활동이 주목받는 가운데 이뤄진 최고위급 인사들의 전격 방문은 일단 북한의 대외노선이 유연해지고 있는 조짐으로 볼 수 있다.

북 최고위급 방문,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 기회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절반의 아쉬움도 있었다. 북측 최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을 계기로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 현안들이 풀리고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도 논의되길 바랐던 입장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라든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같은 당면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더하는 것은 이들 3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못 만났다는 점이다. 최고위급 3인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최소한 구두 메시지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 메시지를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서 박 대통령의 의중이 이들 3인을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전달됐다면 대화 분위기로의 전환에 한층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합의가 불발되고 박 대통령 면담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섣부른 낙관론에 제동이 걸렸다.

당장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10월 4일 북측 고위급 인사 3인의 인천 방문으로 대화 분위기가 고조된 이후 오히려 남북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요동치고 있다. 10월 7일 서해상 교전, 10월 10일 전단 풍선 총격전, 10월 15일 군사당국 간 접촉, 10월 16일 북측의 군사당국 간 접촉 전말 폭로, 10월 19일 군사분계선 총격전 등 남북 간에 군사 충돌과 대화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전개됐다. 급기야 10월 25일 임진각에서는 대북 전단 살포를 강행하려는 일부 탈북인 및 보수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파주 주민 및 일부 시민단체 간 물리적 충돌이 하루 내내 이뤄져 남남갈등의 현장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대북 전단지 살포, 주요 이슈로 부상

대화와 충돌이 요동치는 지금, 남북관계를 대화 쪽으로 완전히 돌려놓기 위한 2차 고위급 접촉이 시급해졌다. 이 시점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 북측 대표단이 10월 22일 발표한 성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성명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황 총정치국장의 인천 방문을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남측이 군사충돌을 막는 조치를 취하면 고위급 접촉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성명은 황 총정치국장 방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을 최초로 언급함으로써 북측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2차 고위급 접촉을 하자는 북측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것이다. 10월 25일로 예고된 일부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지 살포에 대해 박근혜정부의 대응을 보고 고위급 접촉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성명은 박근혜정부에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공을 넘긴 것이다.

대북 전단지 살포 문제가 남북관계 개선이냐, 후퇴냐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은 전단지 살포가 자제되거나 정부의 적극적 대응으로 불발된다면 남북관계가 개선되겠지만, 전단지 살포가 강행된다면 고사총 이상의 군사적 시위 속에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위야 어쨌든, 북측은 박근혜정부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0월 25일 대북 전단지 살포를 둘러싼 갈등이 북한의 군사적 대응으로까지 전환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향후 제2, 제3의 전단지 살포 여부가 남북관계 향방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차 고위급 접촉의 성사를 위해 전단지 살포 주최 측과 정부의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북측이 공을 남측에 넘긴 상황에서 2차 고위급 접촉의 성과가 2015년도 남북관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전단지 살포와 군사적 긴장이 반복될 경우, 한반도의 정세 불안이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분계선상의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유·무형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북측의 군사적 무력시위 압박에 군사분계선 주변 주민들이 받는 불안감에 대해서도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요구된다. 막바지 가을걷이에 나선 주민들이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끊기는 사태에 대한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전단지 살포를 막는 물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안전과 생활상의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직접적인 법적 대응이 어려운 처지라면 간접적으로, 그러나 적극적으로 전단지 살포 단체에 대한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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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4일 인천의 한 식당에서 남북한이 만났다. 한국 측은 왼쪽부터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김규현 안보실 1차장, 홍용표 대통령 통일비서관. 북한 대표단은 오른쪽부터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

2차 고위급 접촉 조기 개최돼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10월 4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의 방문 이후, 짧은 시간에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단지 살포가 발목을 잡기엔 남북 간 현안들이 너무 크고 묵직하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는 시급히 타결돼야 할 현안이다. 가장 인도적인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이 올해 한 번으로 그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 당국의 직무유기다.

우선 2차 고위급 접촉의 성사가 급하다.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될 2차 고위급 접촉의 성사를 위해 전단지 살포는 자제돼야 한다. 현 시점에서 제2, 제3의 전단지 살포가 이뤄진다면 올해 안에 2차 고위급 접촉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이제 남북 당국 양측에 던져진 숙제는 북한 최고위급 3인의 방문으로 모처럼 터진 대화의 물꼬를 이어나가는 일이다. 남북한 갈등이 되풀이돼서는 안 되고 고위급 후속접촉 일정을 합의해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10월 말부터 11월 초로 예정된 2차 고위급 접촉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패키지로 성과를 거두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과가 나온다면, 우리 쪽에서도 이번에 방한한 인사들에 준하는 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의 평양 답방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있었던 북한 최고위급 3인의 방문이 상호 비방 일색이던 남북관계 흐름을 대화 쪽으로 선회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핵문제와 관련해서 6자회담 재개 문제가 병행해서 논의돼야 한다. 그게 안 될 경우 남북 간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과 진전은 어렵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은 패키지로 논의돼야 하고, 미국과 중국 등 전반적인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대화 분위기 전환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우리 정부가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지렛대 삼아 크게, 멀리 보고 선순환의 흐름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이고 과감한 비전과 대안들을 제시해 대화 국면의 주도권을 잡아가야 한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박근혜정부 출범 3년 차이자 박 대통령 임기 내 큰 선거가 없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내년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그만큼 내년, 2015년은 중요한 해다.

내년에 남북관계를 잘 풀려면 올해 남은 시간 동안 가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10월 말부터 11월 초로 예정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성과가 나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도 상호 불신 속에 샅바싸움만 벌인다면, 박근혜정부 임기 내 남북관계는 성과 제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5년도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 박근혜정부의 남북관계 성과를 위해 2차 고위급 접촉이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

 

photo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정치학회 이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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