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호 > 통일공감
통일공감 / 이영수 서울지역회의 여성위원장
이영수 민주평통 서울지역회의 여성위원장은 매사에 흔쾌하다. 2000년 7월, 친구의 소개로 열린의사회에 가입한 지 하루 만에 “몽골에 함께 가실래요?”라는 권유를 받고 얼떨결에 “네” 한 것이 15년째 오지 의료 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냥 했어요.”
이영수 민주평통 서울지역회의 여성위원장(63·(주)정화 대표)에게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 의료 봉사를 해온 비결을 묻자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싱겁다. 2000년 몽골을 시작으로 엄청난 지진 피해를 본 아이티, 스리랑카, 남아공, 에티오피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네팔에 이어 올해 2월 다녀온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까지 오지와 재난 현장만 찾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해온 그의 여정을 어떻게 ‘그냥’이라는 말로 뚝 잘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귀국 길에 얻는 충만함을 생각하면 “결국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겸손과, “일단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죠”라는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돈으로 누굴 돕는 건 쉬운 일이다. 자기 몸을 던져 남을 위하는 게 진짜 봉사다”라고 한 아버지와, 95세의 나이에도 기부와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덕분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1970년대 석유업계에서 활약한 고(故) 이종엽 경일석유 회장이고, 어머니는 서울대병원에 10억 원대 기부를 한 김용칠(95) 여사다.
넉넉한 집안에서 8남매의 막내딸로 곱게 자란 이영수 위원장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22년 전 췌장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을 받게 된 것.
“한 차례 수술을 받고 겨우 회복됐나 싶었는데 또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원망했죠. 그러나 반복적인 시련을 겪다 보니 ‘결국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그에게 민간 의료봉사단체인 열린의사회가 손을 내밀었다. 2000년 7월, 열린의사회에 가입한 지 하루 만에 “몽골에 함께 가실래요?”라는 권유를 받고 얼떨결에 “네” 한 것이 15년째 의료 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출국 예정일은 10일 뒤로 잡혀 있는데 제가 한의과 보조를 맡게 됐어요. 침 한 번 맞은 적이 없는데 한의과 보조라니 당황스러웠지만 봉사가 급하니 예행연습을 했죠.”
그는 최봉춘 원장 밑에서 3일간 ‘발침(拔鍼)’과 소독법을 배웠다. 의사가 침을 놓으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침을 뽑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일이다. 울란바토르 빈민지역 보건소에서의 첫날. 진료실 안에는 4, 5의 환자가 한꺼번에 들어오고 밖에는 수십 명씩 줄을 선 상황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침을 잘못 뽑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침을 너무 일찍 뽑거나 시간을 넘겨버리거나, 다 뽑은 줄 알았던 침이 한두 개 남아 있거나…. 연신 사과를 하며 등허리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진심의 눈빛으로 “바이를라(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나도 누군가를 도움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의사는 아니지만 열린의사회에서 그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해마다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의사의 얼굴은 바뀌어도 이영수 운영위원은 빠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 접수를 하고, 체온을 재고, 응급처치를 하고, 약을 나눠주고, 봉사단원들의 식사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해외 의료 봉사에 이어 북한이탈주민 돕기 나서
매사 흔쾌히 나서는 성격 덕분에 그는 돈 안 되는 직함이 많다. 해외봉사단 파견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코피온 이사, TWW(미래여성모임) 부회장,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기부와 봉사를 하고 있지만 특히 관심을 두는 대상이 북한 주민들이다.
“2009년 12월 북한에 사랑의 연탄 보내기 운동으로 개성에 간 적이 있어요. 트럭 2대에 연탄을 가득 싣고 갔는데 북한 주민들이 장갑이 아까워서 맨손으로 연탄을 나르는 거예요.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얼마나 추웠겠어요. 그 후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민주평통 강남구 여성분과위원장이 되자마자 북한이탈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사투리 발음 교정 지원을 했으며, 여성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16기에는 서울 여성위원장직을 맡아 25개 지역협의회 여성위원 1100여 명을 이끌고 더욱 체계적인 북한이탈주민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 이 위원장은 15년의 오지 의료 봉사활동 기록을 모아 <그들의 눈빛 내 가슴에>(나남)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봉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봉사는 마치 어릴 적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같다. 상자를 열지 않고서는 무슨 과자가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봉사 역시 떠나기 전에는 무엇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상자를 열기 전의 그 기대감과 열었을 때의 설렘과 기쁨도 봉사의 그것과 같다. 이렇게 봉사는 항상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는 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