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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 FOCUS

FOCUS /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변화

시진핑, 북한 ‘편들기’에 지쳤나?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
체제와 이념을 공유하면서 오랜 선린관계를 유지해온 북중관계에 변화의 조짐을 예측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간 유엔의 북한 제재 논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취해오던 중국이 이번 제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종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 같은 변화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진핑의 향후 대북 전략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중은 절이 싫으면 그 절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지리적으로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의 관계는 숙명적인 것이어서 버릴 수도,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다. 예로부터 많은 나라들은 선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몹시 복잡하고 불안정해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긴장 수위가 연일 상승하면서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3차 핵실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 한미 두 나라를 향한 북한의 계속된 협박과 위협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마저 최악의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박근혜정부는 대북 대화를 제의했고, 4월 중순 한국에 이어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북한에 의해 촉발된 긴장관계를 대화로 해결하자는 데 한·미·중·일 네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동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북한이 이 같은 대화 제의를 받아들여 종전과 같은 불안한 관계라도 회복될 것 같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관련 당사국과의 선린관계 회복은 무망하기 짝이 없다. 북한이 보이고 있는 집요한 핵 보유 의지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주변 네 나라의 북한에 대한 일관된 요구는 현재까지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팽창정책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중일 간의 영유권 문제로 촉발된 갈등과 대립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예측 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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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2월 13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 맞은편 신의주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농수산물을 중국 쪽에 넘기고 있다.

순망치한의 전통적 북중관계
북한과 중국은 체제와 이념을 공유하면서 오랜 선린관계를 유지해왔다. 물론 언제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지만 비우호적인 관계는 일시적이었을 뿐,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1360㎞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만큼 경비가 삼엄하거나 긴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두 강을 끼고 마주보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강 건너’라 부르며 왕래하기도 하고 육성으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져서 경비도 삼엄하고 강을 건너 탈출하는 주민을 사살하는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신의주에서 단둥, 만포에서 지안에 이르는 지역에는 두 나라 정부가 허용한 16곳의 국경 세관이 있다. 그 세관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오고갈 뿐만 아니라 양국관계의 끈끈하고 질긴 유대관계가 유지되어왔다. 이는 1930년대 중국의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당시 일부 조선 독립투사들이 중국 공산당에 협조한 데 이어 6·25전쟁에선 중국의 인민의용군이 북한군을 도운 것에서 기인한다. 6·25전쟁 당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까지 전사하는 등 그들이 치른 희생은 엄청났다.

당시 마오쩌둥이 아들의 참전은 물론이고 막대한 물적, 인적 손실을 예상하면서도 6·25전쟁에 참가한 것은 북중관계를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이른바 ‘순망치한(脣亡齒寒)’과 같은 숙명적 관계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엔군의 승리로 한반도가 통일되면 입술이 없어져서 이가 시린 것처럼 중국이 곧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을 심히 우려했다고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순망치한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다른 지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참전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렇게 피로 맺어진 북중관계를 ‘혈맹관계’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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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진핑 중국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의 대북 제제, 변화하는 북중관계 신호탄인가
이같이 맺어진 혈맹관계 때문에 북한과 중국은 그간 유무상통하면서 비교적 견고한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하여 마오쩌둥이 조작하고 조정했던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 수십만 명의 중국인들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고, 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극도의 경제난 속에서 벌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이 ‘불량국가’로 지목되어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을 때도 중국만은 후견국으로서 북한을 시종일관 옹호하고 두둔하면서 양곡과 에너지를 포함한 전략물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북중관계를 ‘혈맹관계’라는 특수 관계로 규정할 때는 분명한 전제가 있다. 그 같은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호혜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혈연관계와는 달리 ‘혈맹관계’는 인위적인 관계인 데다 국익 우선이라는 냉혹한 국제관계를 감안할 때 국익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발생할 시 양국관계가 동요되거나 파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주장과 태도를 두고 객관적이지 못하다, 국제규범에 어긋난다는 식의 비판과 비난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의 후견국을 자처했던 것은 북한을 잃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 위협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이어 단행했고 온갖 협박과 공갈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3대 세습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마저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 중국의 이번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094호’ 참가와 동의는 중국의 이러한 실망과 우려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이다.

그간 중국은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가 논의될 때마다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 이번 제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태도 변화를 보였다. 모르긴 해도 중국은 이제 북한이 호혜적인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느꼈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자처했던 후견국으로서 느끼게 된 실망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중국의 변화는 정부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반대하는 간헐적 반핵시위가 벌어졌고, 중국 국무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중국망(www. china.com.cn)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저한다면 중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던 당일 중국의 양제츠 외교 담당 국무위원은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으며 이와 때를 같이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나쁜 행동을 계속 참아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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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고 있는 압록강 철교(중조우의교)위로 화물차와 열차가 다니고 있다. 왼쪽이 중국 오른쪽이 북한 방향.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바뀌나?
최근 중국은 자국 내 북한 은행의 불법 영업을 금지한 데 이어 주요 외화 유입 통로인 북한 식당을 단속하는 등 다양한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에 대한 제재로 국경을 봉쇄하고 무상 지원하던 식량과 석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흘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한반도 관련 입장은 매우 명확하고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적 수사에서 ‘없다’는 말은 곧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대북 압박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론 내리기 어렵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취임을 축하하는 전화를 걸었을 때 시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기조는 ‘평화와 안정’에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지나친 압박과 제재, 그리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말미암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지는 것을 중국은 결코 원치 않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정치·군사적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 북한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혈맹관계’를 들먹이며 후견국으로서의 부담을 자임해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국제규범이나 상식은 말할 것도 없고, 막가파식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중국은 실망을 넘어 급기야는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커다란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국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주변의 안정과 평화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13억 중국인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른바 샤오캉(小康)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주변 정세의 안정은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선택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북한의 내재적인 한계와 약점 그리고 체제와 이념적 특성 때문에 갈수록 부담은 늘고 책임만 무거워지게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가 통일되어도 평화와 안정이 보장될 수만 있다면 북한이 지니고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던질지도 모른다. 이 같은 예측은 최근 중미 간에 오가는 언급,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미사일 방어망(MD)을 강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나, 통일된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을 고려할 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즉, 중미 간에 모종의 빅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론은 시진핑의 대북 전략에서 변화 조짐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의 희생을 다시는 치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중국과 미국의 생각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국의 대북 전략이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이자 한국정치학회 이사, 국제정치학회 이사. 프레시안 중국 탐구 칼럼리스트이자 KBS 국제방송‘시사초첨’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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