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 통일칼럼
통일칼럼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목표이자 과제는 임기 내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행복한 통일의 기초를 닦기 위해 무엇보다 남북한이 기존에 합의한 약속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긴장과 갈등 대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튼튼한 안보와 함께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난 두 달 동안 ‘핵 선제 타격’, ‘최종 파괴’, ‘전면전 돌입’, ‘잿더미’ 등 핵무기를 동원한 대남 공격을 암시하는 온갖 험악한 용어를 총동원하면서 남한과 국제사회에 대해 공갈과 협박을 지속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1992년 남북한이 합의한 사항이면서 북미, 북중, 북일 간 합의이자 6자회담을 통한 9·19 및 2·13 합의에 따른 약속이며, 북한 입장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 수령들의 유훈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의 성격과 과제, 이행 과정, 그에 따른 반대급부에 대해서는 6자회담을 통해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합의안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결단만 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가능하다.
둘째, 북한은 북미 대화를 비롯해 관련 국가들과의 대화를 위한 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러한 북한의 일방적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기존의 합의 이행을 거부할 경우 박근혜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안을 강력히 이행할 수밖에 없다. 대화를 위한 대화보다는 북한의 핵무력 강화정책을 포기토록 하기 위한 비군사적 조치를 국제사회와 더불어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도발과 대화, 그리고 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새로운 신뢰의 기반이 구축될 수 있다.
셋째, 한반도 평화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의 확보를 통해 정착될 수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운반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실전 배치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처하려면 기존의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통한 강력한 확장 억지 조치와 더불어 북한 핵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선제적, 실질적인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실질적 억지력 확보는 우리도 핵을 보유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 재조정과 전술 핵무기 한반도 재배치 등 가능한 방식에 대한 한미 양국 간 전반적인 정책 조율이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우리의 기대와 희망보다는 현실을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신뢰는 쌍방의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프로세스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므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어야 하고 전략적으로 인내하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이행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