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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 북한 IN

북한 IN

4월, 고달픈 북한 축제의 달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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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은 북한 최대의 명절로 꼽힌다. 태양절에는 각종 전시회와 체육대회, 결의대회 등 군중을 동원한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북한에서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은 4월이다. 고유의 명절 ‘청명’부터 ‘태양절’, 그리고 ‘북한군 창건 기념일’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명절 풍경은 어떤지 살펴보았다.

4월 초 청명은 북한 사람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가 산소를 단장하고 준비해간 과일과 술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북한은 광복 후부터 한식에 조상의 묘를 찾는 전통을 유지해왔지만, 약 10여 년 전 한식이 중국 명절이니 대신 청명을 쇠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져 청명에 성묘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달력에 청명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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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09년 4월, 김일성의 97회 생일 행사 일환으로 열린 제11차 ‘김일성화축전’이 평양 김일성화?김정일화 전시관에서 개막됐다.

북한의 최대 명절은 ‘태양절’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이다. 북한은 김일성 50주년 생일인 1962년부터 이날을 기념해왔는데, 1974년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 아예 민족 최대의 명절로 못 박았다. 김일성 생전엔 이날을 숫자 그대로 ‘사일오 명절’이라고 불렀는데, 김일성 3년상이 끝난 1997년부터 이날이 태양절로 명명됐다.

북한의 최고 명절인 만큼 각종 기념행사가 거창하게 벌어진다. 주민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대표적인 행사로는 ‘충성의 노래 모임’이 있다. 각 기업소, 농장별로 예술 공연을 보름 넘게 준비한 뒤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15일 당일에는 역시 직장 또는 학교별로 체육대회를 진행한다. 체육대회가 끝난 뒤에는 집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오랜만에 허리띠를 풀어놓는다. 그 외 국가급 행사로는 ‘4월의 봄 예술축전’, 군 열병식 등의 행사가 평양에서 열린다.

북한 주민들은 4·15를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로 인식되도록 어려서부터 세뇌당한다. 김정일은 김일성 65주년 생일이던 1977년에 4월 15일을 맞아 주민들에게 선물을 하사하면서 본격적인 대국민 선물정치를 폈다. 1977년 이후 매년 4월 12, 13일쯤엔 전국 모든 학교에서 선물 전달식이 열린다. 소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나이)까지 학생들에게 1㎏ 정도의 당과류가 전달되는데, 학교 강당에 부모들까지 다 모아놓고 ‘선물 전달식’을 벌이면서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크게 선전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에서 사탕과자를 사먹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이전까진 북한에서 아이들이 사탕과자를 먹으려면 4월 15일과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 하사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학교 교복도 4월 15일을 기념해 2년에 한 번씩 내주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사탕과자와 새 옷이 생기는 4·15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4월 15일은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약 20년 전부터는 교복을 돈 받고 팔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4·15가 교복이 생기는 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른들의 경우엔 가구마다 술과 기름, 간장 1병씩, 돼지고기 500g, 빨래비누와 칫솔 몇 개 하는 식으로 특별공급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는 국가 지원금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당국이 지방 행정기관에 ‘어떤 일이 있어도 주민들에게 명절 선물을 하라’는 지시를 내려 시행되는 것이다. 이를 집행하지 못하면 무능한 간부로 낙인찍히게 되므로 북한 간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명절 공급을 보장하려 노력한다.

명절 공급은 북한의 경제 사정을 반영하는 지표로 인식된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명절 공급도 푸짐했지만 최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15일엔 아이들에게 당과류만 겨우 공급했을 뿐 각 가정에는 아무런 명절 공급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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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한 주민들이 2012년 4월 16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4월15일)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김일성광장에 모여 춤을 추고 있다.

점차 사라져가는 축제 분위기
북한은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正)주년 행사를 매우 중시한다. 김 부자의 생일, 1948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 194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과 더불어 4월 25일은 북한의 5대 명절엔 들어갈 수 있는 기념일이다. 북한군 창건일이 정주년이 될 때는 김일성 생일(1912년)과 김정일 생일(1942년)도 정주년이 된다. 따라서 군 창건일은 두 생일 행사에 가려져 중요한 명절이란 위상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신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지난해부터 4월에 두 개의 기념일이 더 추가됐다. 4월 11일은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가 된 날, 13일은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이 된 날이다.

최근 들어 4월의 축제 분위기는 점점 꺼지고 있다. 선물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각종 기념보고대회를 열어 때우는 기념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재미없고 진부한 기념보고대회 따위의 행사에 억지로 참가해 충성심을 입증해보여야 하는 주민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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