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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 진단

진단 /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그 이후

북한, 당 중심체제 확립위해
주변국과 기싸움 강화 할 듯
엄종식 서울대 초빙교수
지난해 12월 미사일 발사로 시작된 북한의 도발과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한반도 상황 전개에
세계 언론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출경 차단, 판문점 직통전화 단절, 군 통신 차단, 전시상태 선포, 최고사령부 성명 발표, 군 작전회의 공개, 미사일 발사 준비 등의 행태는 무엇보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적 구축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권력의 전면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이후 세대교체, 군 간부 교체, 김정은을 상징하는 1호 전투태세명령 발표,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지도력 과시, 제1비서 추대(4월 11일) 및 제1국방위원장 추대(4월 13일) 1주년 행사, 김일성 생일(4월 15일) 행사 등을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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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전협정 및 남북 불가침 합의의 전면 파기 선언으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킨 김정은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압록강국방체육단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김정은의 권력 구축 과정으로 봐야
김정은의 경우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압축 승계 작업을 하고 있다. 김일성은 1956년 8월 자신의 권력투쟁사에서 최대의 위기로 평가되는 종파사건을 겪으며 1인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등 20여 년에 걸쳐 수령체제를 세웠다. 김정일도 20여 년간의 통치 경험과 후계체제 구축 과정을 거쳐 유일 지도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와 달리 권력 장악 과정이 2,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권력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는 두 번의 당대표자대회와 함께 최근 당 세포대회, 당 중앙군사위, 당 중앙위 전원회의(3월 31일) 등을 개최하여 당 체제를 과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지 정치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태도도 보이고 있으며, 김정일과 달리 자신의 행보와 이설주의 활동을 공개하고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선전심리전에 활용하기도 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을 감행하면서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미국을 겨냥해 그동안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기조하에 무시 내지 무관심으로 북한을 대해오던 상황을 변화시켜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올려 북미 대화 상황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미국 정부와 미국 언론은 현재 상황을 19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에 상응하는 북한 위기로 보고 연일 북한 문제를 핫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노리는 의도가 상당 부분 달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주도하고 B–52 전략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 F–22 전투기 등 첨단무기를 동원해 시위를 벌였다. 이는 미국의 확고한 핵우산과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준 것인 동시에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방어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 또한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계산된 모험주의’를 감행해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북한의 지정학적 위상과 전략적 가치를 부각해 중국으로 하여금 북중 동맹구도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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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핵미사일 개발은 궁지에 몰린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펼칠 수 있는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다. 북한의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당 중심 체제 강화로 당의 위상 확인
북한은 앞으로도 당 중심 체제를 강화하면서 후계체제 공고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간부들이 교체될 것이지만 새로운 정책 노선을 표명하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부 결속과 체제 강화를 위한 내부 정비에 우선적으로 나설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난해 6·28 경제담화설, 인민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김정은의 언급, 최근의 경공업 대회, 실각했던 박봉주 총리의 재등장 등 현상적 변화를 보이고는 있으나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실패 경험, 그리고 당과 군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내각의 위상 등을 고려해볼 때 북한이 획기적인 경제 개선 조치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남정책과 관련해서는 2010년의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 지원을 보류한 5·24 대북 제재 조치 등을 둘러싸고 박근혜정부와 기 싸움, 길들이기, 흔들기 등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새 정부에 대한 관망기를 거쳐 본격적인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이더라도 우리 정부가 대화에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대화는 보상이 아니다. 대화는 긴장을 완화하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며, 남북대화만이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대외적으로 북한은 지난해 북미 간의 2·29 합의의 연장선상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서 관여로 전환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5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그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핵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으로도 모든 핵능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므로 6자회담의 성사 역시 불투명한 상태이다. 따라서 핵 문제와는 다른 트랙에서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 통일 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올해로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고 2015년이면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평화협정 체제 협상을 북핵 문제와 단계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진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대북·통일정책은 본질적으로 이원성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상황에 반응할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갖고 안을 만들어 선제적으로 상황을 주도해나가야 하며 미국, 중국 등 관계국과의 협의를 리드해나가야 한다. 분단 68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 정부가 국정지표에서 명기한 대로 통일시대를 위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정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엄종식
전 통일부 차관.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이자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남북사회통합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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