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인 4월 3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테헤란의 대통령 공관 사다바드궁에서 협상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는 이란 측 협상 대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다.
4월 2일 스위스 로잔에서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쟁점에 합의했다. 이란은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서방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란의 핵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북한의 핵 문제와는 어떻게 다른지 분석해본다.
2002년 8월 이란이 나탄즈의 지하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아라크에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40MW 중수로를 건설한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독일(P5+1)은 이란이 핵무기 생산 능력에 빠르게 근접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해왔다.
2003년 10월 미국의 주장에 따라 영국, 프랑스, 독일(EU3)은 이란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잠정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이란은 2003년부터 2년간 이를 따랐다. 하지만 2005년 8월 보수주의자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 후, 이란은 EU3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음을 선언하고 농축 프로그램을 재개했으며 2006년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 집행이사회가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
이후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관심은 제재에 맞추어져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2010년 점차 강화된 일련의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미국, 유럽연합(EU) 및 기타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제재 조치를 추가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규모 및 우라늄 농축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 2012년 2월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나탄즈에 설치된 원심분리기의 수를 2006년 6월 164기에서 9000기로 늘렸고, 포르도의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을 시작했다. 또한 이란은 3.5% 농축도의 육불화 저농축우라늄(LEU) 3700kg을 생산했고, 2010년 2월 테헤란 연구용 원자로의 핵연료 공급 명분으로 우라늄 농축도를 20%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은 이란의 3.5% 저농축우라늄 재고 증가를 우려해왔다. 조만간 이러한 재고량은 원심분리기에 재주입해 한 개의 핵폭탄에 필요한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만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에 3.5% 저농축우라늄 재고의 대부분을 수출할 것을 제안했다. 이 재고량은 테헤란 연구용 원자로의 핵연료 제조를 위해 120kg의 20%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9년 10월 P5+1 대표단은 제네바에서 이란 협상가들과 만나 이 합의에 거의 다다랐다. 아흐마디네자드도 이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란 내 그의 정적들은 이를 비난·공격했으며,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합의를 지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곡절을 거쳐 마침내 2015년 4월 2일 스위스 로잔에서 P5+1과 이란은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쟁점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고, 이란 핵 시설에 대한 IAEA의 접근도 허용하기로 했다.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이란 핵 협상에 대한 기본 틀에 해당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마련한 잠정 합의안으로, 6월 말 최종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란 핵 협상 주요 내용
▶ 이란은 평화적 핵 프로그램을 추구하며, 이란의 우라늄 농축 용량 및 농축 수준과 재고는 지정된 기간에 제한되며, 나탄즈 이외에는 농축시설이 없을 것이다.
▶ 원심분리기에 대한 이란의 연구개발은 상호 합의에 의한 범위와 일정에 따라 실시될 것이다.
▶ 포르도는 우라늄 농축 부지에서 핵·물리·기술연구소로 전환될 것이다.
▶ 합의된 연구 분야에 대해 국제 협력이 권장될 것이다.
▶ 포르도에는 더는 핵물질이 없을 것이다.
▶ 국제 합작투자 사업으로 이란이 아라크의 중수로를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재설계 및 재구축을 도울 것이다.
▶ 중수로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되지 않고 해외로 방출될 것이다.
▶ 수정된 코드 3.1 이행과 추가의정서 잠정 적용을 포함해 JCPOA 규정을 감시하는 일단의 조치가 합의됐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신 기술의 사용이 허용될 것이고, 과거와 현재의 이슈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동의절차를 통해 향상된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원자력발전소 및 연구로의 공급을 포함하는 민간 원자력분야에서의 국제 협력에 참가할 것이다.
▶ 다른 중요한 협력 분야는 원자력 안전과 핵 보안이 될 것이다.
▶ 이란의 주요 핵 약속에 대한 IAEA의 검증 이행과 동시에 EU는 모든 핵 관련 경제 및 금융제재 이행을 종료하고, 미국은 모든 핵 관련 부수적인 경제 및 금융제재 적용을 중단할 것이다.
세부사항 해석 달라 난항 예상
다만 이번 합의에서 구체적 세부 사항에 대한 미국 측 해석과 이란 측 해석이 달라서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가장 첨예한 이슈인 우라늄 농축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이란이 원심분리기 재고를 현재 약 1만9000기에서 6100기 정도까지 줄이고 그중에서 나탄즈 시설의 제1세대 원심분리기 약 5000기만으로 우라늄 농축을 10년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탄즈 시설에 있는 제2세대 이상의 성능 좋은 원심분리기 모델은 제한된 연구개발에만 이용하고 적어도 10년간 우라늄 농축에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포르도 시설에서는 적어도 15년간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을 것을 원한다.
이에 반해 이란은 자국 내 모든 핵 시설에서의 핵 활동은 중지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르도 시설의 원심분리기 1000기 이상과 관련 기반 시설도 유지·보수되고 그중 원심분리기 집합체인 캐스케이드 2개는 우라늄 농축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2013년 7월 북한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한 핵배낭 부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2012년 2·29 합의에 이르기까지 합의와 파기의 반복이었다.
경제 및 금융제재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이란이 의무를 이행한 다음 IAEA가 검증한 후에 미국과 EU가 핵 관련 제재를 중단할 것이며, 언제든 이란이 약속 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 제재는 재개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란은 JCPOA 이행 후 모든 경제 및 금융제재는 즉시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우라늄 광석을 채굴해 이를 우라늄 농축에 적합한 육불화 우라늄으로 전환하고 원심분리기에서 농축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다. 이란은 다양한 우라늄 농축도를 달성하기 위해서 원심분리기 집합체인 캐스케이드를 수정·가동할 수 있다. 심지어 자체 연구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성능의 원심분리기를 설계·제조했다. 이는 이란이 원심분리기 관련 기술 문제를 모두 극복했고 핵무기에 사용될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현재 이란은 나탄즈와 포르도에 원심분리기 약 1만9000기를 설치했고, 더 농축하면 핵무기 6, 7개를 만드는 데 충분한 양의 저농축우라늄 약 7000kg과 20% 농축우라늄 195kg을 생산했다.
<사진> 이란 핵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4월 2일 밤 테헤란 거리는 국내 경제가 숨통을 틔울 것이라는 기대감에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관련해 이란은 2004년부터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아라크에 40MW 중수 냉각 연구로를 건설해왔다. 원래 계획으로는 2014년 초에 건설을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지금은 JCPOA에 따라 건설을 중지했다. 이 연구로가 운전되면 연간 핵무기 1, 2기 분량인 플루토늄 8~10kg을 생산할 수 있다.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 이란은 1990년대 초 파키스탄으로부터 핵무기 설계와 제조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 1990년대 말까지 이란은 샤하브-3 탄도미사일용 핵탄두를 포함해 핵무기 제조 전용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미국 정보에 따르면, 이후에도 핵무기 개발 관련 연구는 계속됐지만, 2003년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란은 핵 프로그램의 군사적 차원에 대한 IAEA의 조사를 여전히 방해하고 있다.
이란 핵 합의는 미·북 제네바 합의 수준
이번 합의가 북한 핵 문제에는 어떤 시사점을 줄까. 이를 알려면 먼저 북한 핵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건설한 영변 5MWe 흑연로는 연간 핵무기 1기 분량의 플루토늄 5, 6kg 생산이 가능하며, 현재 가동 정지 중이나 유지·보수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최대 50kg 전후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3번의 핵실험에서 소진했을 플루토늄 양을 고려하면 현재 최대 약 30kg 전후의 플루토늄 재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2010년 11월 영변을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우라늄 농축시설 및 건설 중인 실험용 경수로를 공개했다. 헤커 박사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원심분리기 2000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연간 핵무기 1, 2기 분량인 무기급 고농축우라늄 40kg을 생산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박사는 북한이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 용량을 두 배로 확장했다고 주장했다. 2013년 중국의 핵 전문가 주슈후이는 영변 이외에 비슷한 용량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가동 중이며, 북한은 연간 핵무기 5기 분량에 해당하는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100kg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5년 보고서에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박사는 북한이 2020년까지 핵무기 50~100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북한 비핵화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2012년 2·29 합의에 이르기까지 합의와 파기의 반복이었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 제거와 미국과 북한 간 정치·경제 분야의 관계 정상화 조치를 맞바꾸고자 한 합의로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 목표였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핵 개발 의혹 대두 이후 미국과 북한 간 갈등으로 파기됐다.
2005년 2월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같은 해 9월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합의, 2007년 2·13 합의(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10·3 합의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를 이루었으나 북한 핵 검증 문제 등으로 2008년 12월 이후 6자회담은 중단됐다. 2012년 2월 미국과 북한 간에 비핵화 사전조치를 포함한 2·29 합의가 이뤄졌으나 같은 해 4월 북한의 은하2호 로켓 발사로 사실상 폐기 상태다.
이미 3차례 핵실험, 2012년 로켓 발사, 최근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을 시도했고 미국과의 합의를 수차례 파기한 북한은 핵 문제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도한 이란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란 핵 합의는 북핵 관점에서 본다면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6월 말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이 최종 합의에 이를지라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향후 IAEA의 핵 사찰 검증 과정에서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불거질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강정민 KAIST 초빙교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석사, 일본 도쿄대 시스템양자공학 박사. 미국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핵·원자력 기술·정책 연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