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01년 시작된 청산리 역사대장정. 햇수로 15년째이지만 행사를 갖지 못한 해가 있어 올해로 14회째다. 송일국 씨는 약 100명의 대원과 함께 10일 전후의 일정을 함께한다.
최근 ‘삼둥이 아빠’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송일국. 그는 오는 6월 26일부터 7월 5일까지 외증조부인 김좌진 장군과 항일독립지사들의 발자취를 찾는 ‘청산리 역사대장정’에 동참해 대학생 참가자들을 인솔하는 든든한 맏형 노릇을 맡는다. 2001년부터 시작해 벌써 열 번째 오르는 대장정이다.
송일국(44) 씨가 2001년 처음 청산리 역사대장정에 오른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사재를 털어가며 어렵사리 사단법인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를 이끌어가는 어머니(김을동 국회의원)가 도움을 요청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길이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당시로선 어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에 항일무장투쟁기념관 ‘한·중 우의공원’을 짓는다고 살던 집을 팔고 월세 집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낼 돈이 모자랄 만큼 쪼들렸던 적도 있었다. 안 해도 될 고생이라 여겨졌다. 그런데도 이를 감수해가며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기에는 그는 너무 ‘철이 없었다’.
그로부터 14년, 송일국 씨는 방송 일정 때문에 2회에서 5회까지 부득이하게 불참한 것을 빼고는 해마다 여름이면 짐을 꾸렸다. 그리고 열흘 전후의 일정으로 대학생들과 함께 김좌진 장군과 독립군의 자취와 얼이 서려 있는 단둥, 지안(集安), 룽징(龍井), 하얼빈 등 항일 유적지와 백두산을 누볐다. 그러면서 변했다. 생각의 키가 해마다 대장정에 참여하면서 한 뼘씩 커졌다.
“그간 제가 배우로서 유명해지게 된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조의 항일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부터 그분들의 희생과 봉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겠구나, 라고 다짐하게 된 거죠. 한마디로 역사대장정을 하며 ‘새 사람’이 된 겁니다.”
송일국 씨는 역사대장정에 오르면 배우도, 삼둥이 아빠도 아니다. ‘팀장님’이다. 장정에 참가한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고락을 나누는 선배요 형님이 된다.
“대장정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늘 당부합니다. ‘대장정 기간만큼은 스스로 광복군이 되었다고 생각하자’고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찾지 못했다. 우리 국토는 아직도 갈라진 상태가 아닌가. 통일이 되었을 때, 그래서 일제강점기 전의 온전한 우리 국토를 복원했을 때만이 진짜 광복을 맞게 되는 것’이라고요.”
백두산에 오를 때마다 그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옆을 돌아보면 함께 오른 젊은이들 역시 만감이 서린 표정이다. 서울에서 육로를 통해 올라야 할 우리의 명산이 중국을 거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꿈을 꿉니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저의 세쌍둥이 아들 대한, 민국, 만세와 함께 역사대장정 길에 올라 내 발로 걸어서 백두산에 오르겠다고요.”
<사진> 송일국 씨는 올해로 열 번째 참여하는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통해 “철없던 나 자신이 새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안중근 의사에게 마음의 빚 있어
그의 마음에 맺힌 또 하나의 빚은 안중근 의사다. 외증조부인 김좌진 장군은 만주에서 유해를 무사히 수습해 충남 보령에 모셨으나 안중근 의사는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그 영령이 이국의 땅을 헤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자신 연극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 의사 역으로 연기를 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만, 안중근 의사가 남긴 미완성 유작 ‘동양평화론’의 내용처럼 언젠가 남북이 하나 됨은 물론 한·중·일이 평화를 이루며 공동의 가치를 지키는 세상이 되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처럼 배우로서의 삶에 감사한 적이 없다고 한다. 배우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항일독립운동을 좀 더 널리 알리고 기념사업회를 돕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안중근 역으로 출연하는 연극을 보려고 일본에서 찾아온 한 팬은 일부러 독립기념관 등을 찾아 안중근과 항일운동사를 공부하고 오기도 했다. 드라마 ‘주몽’을 제작했던 MBC는 드라마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송일국과 어머니 김을동 의원의 뜻에 동감해서 한·중우의공원 내에 답사객 및 대장정 참여 학생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짓는 데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이제 그는 배우라는 이름에 ‘삼둥이 아빠’라는 이름까지 더해져 남녀노소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그가 ‘육아 도사’ 삼둥이 아빠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절묘한 사연이 있다. 가수 김장훈과 독도 방문을 했다가 일본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그는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한동안 방송 일을 쉬어야 했다. 세쌍둥이가 태어났을 무렵이다. 방송 일이 없으니 시간은 많고, 아내가 마침 낙상 사고를 당해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져서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몇 달간 육아에 전력투구했다. 그가 자타 공인 ‘육아 슈퍼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때의 경험 덕이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기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최일선에서 일하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러분들처럼, 저에게는 배우로, 가장으로 힘껏 애써서 사는 것이 제 방식의 나라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