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해질 무렵 농여해변의 황홀한 노을.
양영훈 여행작가
보이지 않는 북방한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군사 대치가 팽팽하게 유지되는 서해 5도의 섬, 대청도. 그러나 군사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자연풍광을 갖춘 것은 물론 낮 시간에는 자유로운 관광이 가능해 한가로운 여행을 즐기기에 맞춤한 곳이다.
대청도는 이른바 ‘서해 5도’에 속한다. 경기만의 서북부 해역에 위치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가리켜 흔히 ‘서해 5도’라 일컫는다. 보이지 않는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대치 상태가 팽팽하게 유지되는 섬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의외로 평온하다. 고향처럼 정겹고 아늑하다. 북녘 땅이 빤히 보이고 군인들이 유달리 많다는 점만 아니면, 남쪽의 여느 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대청도는 이른바 접적지역(接敵地域)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풍광이 워낙 빼어난 데다 낮 시간에는 자유롭게 해변에서 낚시나 해수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청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의 면 소재지 섬이다. 하지만 전체 면적은 12.63㎢(약 382만 평), 해안선의 길이는 24.7㎞밖에 안 된다. 이웃한 백령도 면적의 약 4분의 1에 불과하다. 일주도로를 따라서 옥죽동, 농여해변, 지두리해변, 사탄동해변 등 대청도의 해안 절경과 명소를 모두 둘러보는 거리도 대략 15km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전거 하이킹이나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청도의 해변에는 대부분 모래가 깔려 있다. 자연풍광이 가장 수려한 농여해변을 비롯해 사탄동해변, 답동해변, 지두리해변, 옥죽동해변 등이 모두 모래 해변이다. 특히 농여해변과 답동해변 사이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옥죽동해변 뒤쪽에는 길이 2km, 폭 1km 규모의 광활한 모래언덕도 형성돼 있다. 옥죽동해변과 마을, 그리고 바다 건너편에 백령도가 빤히 보이는 비탈에 형성된 이 모래언덕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충남 태안군의 신두리 해안사구보다도 더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서 마치 외국의 어느 사막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발길 붙잡는 희한한 농여해변 고목바위
옥죽동마을 근처에는 농여해변이 있다. 미아동해변까지 이어지는 백사장이 시원스러운 해변이다. 썰물 때에는 평상시의 백사장보다도 훨씬 더 큰 풀등이 거짓말처럼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곳 해변에는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상의 기암괴석도 많다. 특히 고목바위가 압권이다. 거대한 고목 하나가 고스란히 화석으로 남은 듯한 형상이다. 나뭇결 같은 무늬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마치 잘 보존된 규화목(硅化木)을 보는 듯하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고 희한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진> 농여해변의 고목나무바위. 수백 년 된 고목의 밑동을 쏙 빼닮았다.
다양한 기암괴석과 드넓은 모래 해변이 한데 어우러져서 그림 같은 풍광을 연출하는 농여해변은 해넘이와 저녁노을도 장관을 이룬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핏빛처럼 선연한 붉은빛의 저녁노을이 한동안 스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냥 넋 놓고 그 황홀한 노을을 감상할 수는 없다. 이곳은 일몰 이후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군사지역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눈앞에 펼쳐지는 이 바다에서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해 마흔여섯 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조국을 수호하다 산화했다.
대청도의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지두리해변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 있다. 삼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늑한 느낌이 든다.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바람과 파도가 비교적 잔잔한 데다가 해변의 수심도 얕은 편이다. 길이 1km, 폭 300m의 백사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넓고 시원스럽다. 하지만 해변 주변에 그늘막, 주차장, 샤워장을 겸한 화장실 이외의 편의시설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사진> 마치 중동의 어느 사막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옥죽동의 사구.
새가 바다에 엎드린 형상의 사탄동해변
지두리해변에서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서면 사탄동해변에 다다른다. 해수욕장으로 내려서기 직전의 고갯길에서 바라보면, 해수욕장 주변의 지형이 마치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바다에 엎드려 있는 듯한 형상이다. 새의 오른쪽 날개 앞에는 아담하고 깨끗한 사탄동해변이 펼쳐져 있다. 유달리 모래가 많아서 모래 ‘沙’(사), 여울 ‘灘’(탄)자를 써서 ‘사탄동’이라는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길이 1km, 너비 100m쯤 되는 사탄동해변 근처에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동백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66호)가 있다. 이른 봄날이면 붉은 동백꽃이 만개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사탄동해변에서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독바위해안과 소청도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당도한다. 독바위는 수만 겹의 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갯바위인데, 그 풍광이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사진> 소청도 남쪽 해안의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천연기념물 제508호).
대청도까지 간 김에 소청도도 한번 둘러볼 만하다. 대청도 남쪽에 위치한 소청도는 아주 희귀한 해안 절경이 하나 있다. 온통 하얗게 분칠을 해놓은 듯한 분바위가 그것이다. 달빛을 받으면 하얀 띠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월띠’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바위의 정체는 바다나 호수 등에 서식하는 남조류나 남조박테리아 등이 만든 석회암 화석의 일종인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억~10억 년 전쯤 형성됐다는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는 모양이 아름답고 보존 가치가 높아서 천연기념물 제508호로 지정돼 있다. 소청도 선착장에서 분바위까지 가려면 걸어서 약 30분쯤 걸린다.
소청도 서쪽 끝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는 소청도등대(032-836-3104)가 서 있다. 1908년에 처음 불을 밝혔다는 이 등대는 황해도의 서남쪽 바다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와 발해만의 여러 항구로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 운항을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숙박이 가능한 개방등대는 아니지만, 일반인들도 자유로이 관람할 수는 있다. 선착장에서 등대까지는 도보로 왕복 2시간쯤 걸린다.
여행정보
▶숙박
모래언덕과 농여해변을 끼고 있는 옥죽동에는 솔향기펜션(032-836-2477), 늘푸른민박(***), 초록별펜션(032-836-2122), 엘림민박(032-836-5997) 등 시설 좋은 숙박업소가 있다. 대청도의 관문인 선진포항과 그 부근에는 엄지여관(032-436-2035), 대청펜션(032-836-4240), 소담골민박(032-836-2464), 솔밭나루터민박(032-836-8999), 수경민박(032-836-3664) 등의 민박집이 있다. 소청도에는 노을펜션(***), 깜팽이민박(032-836-3035) 등이 있다.
▶맛집
대청도의 관문인 선진포에는 바다식당(032-836-2476), 만나식당(032-836-3579) 등의 음식점이 몇 곳 있다. 그중 바다식당은 성게비빔밥, 성게칼국수, 회덮밥, 매운탕 등의 해물 요리와 생선회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옥죽동 가는 길의 솔숲 초입에 자리 잡은 소나무가든(032-565-9999)에서는 오리주물럭, 김치찌개 등의 식사가 가능하다.
▶교통
• 인천↔대청도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소청도, 대청도를 경유해 백령도까지 운항하는 쾌속선 하모니플라워호와 코리아킹호가 하루 2회(07:50, 08:30) 출항한다. 소청도는 약 3시간 30분, 대청도는 약 3시 50분 소요. 대청도발 인천행 여객선은 13:10, 13:55에 선진포항을 출발한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예고 없이 증편되거나 좌석이 일찍 매진될 수도 있으므로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www.seomticket.co.kr)에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 섬 내 교통 대청도에는 면사무소(032-899-3616)에서 운영하는 공용버스가 하루 8회씩 일주도로를 선회하며 대부분의 마을을 두루 거쳐간다. 1대뿐인 개인택시(032-836-1359)를 이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