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단의 작업 모습. 2007년부터 남북이 함께 발굴을 하다 2011년 중단되었고, 2014년 극적으로 공동조사가 재개됐다
북한은 통일신라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하고 고려를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로 간주한다.
그 고려의 왕궁터인 만월대 발굴작업을 남과 북이 2007년부터 함께 벌였다. 중간에 공동 발굴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2014년 재개해 6차에 걸쳐 고려청자 등 1만 점이 넘는 유물을 발굴하는 개가를 올렸다.
남북 분단 70년이란 세월의 간격은 남과 북의 말과 글,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에도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역사를 기술하고 해석하는 문제에서도 남과 북은 이미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통일신라’란 단어가 북한에서 발행하는 역사책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북한 학계에서는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을 외세, 즉 당나라를 끌어들인 반민족적 행위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할 것이다. 그 해결책은 바로 통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한 뒤 그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과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개성 만월대 표지석과 중앙 계단. 만월대는 고려 왕궁 터다.
남북 간의 접촉은 공식적인 허가와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최근 수년간 남북 교류는 매우 단단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2014년 7월 22일 남북의 공동 고고학발굴단이 개성의 만월대에서 다시 만나 역사적 과업을 이어갔다. 만월대는 고려의 왕궁이 있던 자리다. 태조 때 처음 세워진 이후 공민왕 때 외적의 침입으로 불타버릴 때까지 400년 이상 고려의 중심이었다.
이 역사적 현장을 2007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 제5차 조사를 끝으로 중단되었다가 2014년 7월 극적으로 조사가 재개된 것이다. 이 사업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남측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주관하고, 북한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우리 측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무를 맡아 공동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 사업은 남북 간 문화유산 부문의 대표적, 상징적 사업이 되었다.
남북 공동 유물 조사는 통일의 작은 초석
통일신라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하는 북한에서는 고려를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합한 통일국가라는 것에는 남북 모두에게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 통일국가 고려의 왕궁 터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는 역사적 과업이다. 거의 전 부문에서 꽁꽁 얼어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다시금 이어진 남북 문화유산 공동 조사의 재개는 훗날 통일을 위한 작은 초석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금까지 남북 간 문화적 교류나 협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만월대 공동 발굴사업처럼 6차에 걸쳐 직접 현장을 발굴해 조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짧게는 20여 일에서 길게는 60일 가까이, 남북의 전문가들이 역사의 흔적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통일을 위한 걸음을 함께한 것이다.
<사진> 만월대에서 출토된 이월청자. 남북 공동 발굴사업의 성과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과는 다른 특이한 고려청자를 비롯해 1만 점이 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폭 13m가 넘는 새로운 계단지 등이 발견되었다. 오늘날 ‘Korea’란 명칭을 세상에 널리 쓰이게 만들었던 고려의 찬란한 문화를 남북이 공동으로 찾아간다는 것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통일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남북 문화유산 교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6차에 걸쳐 진행된 개성 만월대 공동 조사가 2015년에도 계속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 역사의 자존심처럼 회자(膾炙)되는 고구려의 문화유산, 특히 평양의 고분들이나 궁성 등의 역사유산들에 대한 남북 공동의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어본다.
최근 북한에서 발간되는 글들에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심심찮게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같은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서로 반쪽씩의 자료와 생각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차츰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까. 현장에서 함께하는 남과 북의 연구자들이 그리도 낯설었고, 한편으로는 경계의 표정을 놓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통일의 문은 그 앞에 바로 열려 있을 것이다.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프랑스 파리7대학교 역사고고학 박사.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을 지냈고, 현재 만월대 남
북공동발굴조사단의 남측 조사단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