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키 김 씨는 “북한 사회에서 통제당하는 학생들의 인간적인 단면, 살아가는 방식 등 북한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북한의 평양과학기술대에서 6개월간 영어를 가르쳤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45·Suki Kim) 씨.
김 씨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책 <평양의 영어선생님>을 펴냈다.
북한 주민들의 고달픈 생활상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북한 특권층 자제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준다.
유덕영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수키 김 씨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출간한 <평양의 영어선생님>의 원제는 <Without You, There Is No Us(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노래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에서 따왔다.
김 씨는 1월 22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평양과기대에 가게 된 까닭과 북한 특권층 학생들의 생활상, ‘종북 콘서트’ 논란 이후 강제 출국된 재미교포 신은미 씨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이번에 책을 낸 계기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많이 돌아다니지만 북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알게 해주는 정보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작가로서 북한 사회에서 통제당하는 학생들의 인간적인 단면,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모습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북한의 특권층 자제들은 보통 주민들과 달랐나.
“평양과기대는 2011년 주체 100년을 맞아 다른 모든 대학이 문을 닫고 대학생들이 공사 현장에 동원되었을 때에도 유일하게 쉬지 않았던, 그야말로 특권층 자제를 위한 대학이다. 이런 학생들조차 1초의 자유도 없는 일상을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 단체로 구보를 하고 밤에는 군복을 입고 보초를 선다. 모든 것을 허락받아야 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밖은 사정이 더 안 좋았겠지만 대학 건물은 전기가 나가기도 하고, 난방이 안 돼 추웠다. 특권층 자제들이었지만 물자도 넉넉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안됐다’고 느낀 적은….
“과학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인터넷도, 스티브 잡스도 몰랐다. 나는 일부러 ‘맥북(애플에서 나온 노트북컴퓨터)’을 펴놓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감시를 받고, 서로를 감시하는 학생들이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에 호기심을 참았다고 봐야 한다. 알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사정을 이해할수록 안쓰럽고, 로봇처럼 행동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슬펐다.”
<사진> <평양의 영어선생님>의 영어 원제는 <Without You, There Is No Us(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노래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에서 따왔다
책에 북한 학생들의 거짓말이 묘사됐는데….
“학생들이 뻔한 거짓말을 했다. 한 학생은 5학년 때 자신이 토끼를 복제했다고 태연하게 얘기했고 다른 학생들은 맞장구를 쳤다. 또 북한 과학자가 A형 혈액을 B형으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가 이를 부러워한다고도 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는데, 부모가 보고 싶으면 전화를 한다고 했지만 전화기 위치를 물으면 대답하지 못했다. 군복을 입고 김일성학 연구실 앞에서 보초를 선 일이나 생활총화(기숙사에서 실시하는 자기 비판 모임)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왜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보나.
“학생들의 거짓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학생들에게는 거짓된 내용이 계속 주입되고,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 북한의 체계를 외국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학생들에 대한 감시도 거짓으로 둘러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니 버릇이 된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북한에서 거주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한시도 혼자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줄기차게 감시를 받았다. 감시원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이 내 취침시간과 기상시간까지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 수업 상황뿐만 아니라 식사 때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도 보고됐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할 수 없었고, CD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이유로 MP3플레이어로만 음악을 듣게 하는 등 행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나에게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학생들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도 있어 신경이 곤두섰다. 학생들은 이런 감시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같은 대상인 북한에 대해 신은미 씨와 무척 다르게 묘사했는데….
“북한은 외부인에게는 연출된 모습을 보여준다. 연출된 모습을 북한의 실제 모습이라고 믿고 나오는 사람이 꽤 있다. 북한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자들도 감시를 당하는데 그런 사회를 자유롭다고 보는 게 이상하다. 북한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와서 글을 쓰는 것은 홍보 담당자가 할 일이다. 나는 홍보를 하려고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며칠씩 가서 보는 것은 몇 번을 들어가봤자 똑같은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주체사상탑 보고, 사람들 소풍하는 모습을 보는 것 정도다. 그런 모습으로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어 들어가서 생활하며 지켜본 것이다.”
북한과 평양과기대 측에서 “북한을 떠난 후 책 출간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구두로 주의사항 정도로 들었지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북한을 달라지게 할 수가 없다.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려면 다른 선택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