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광숙 씨와 한용수 씨는 2000년 결혼한 첫 탈북자 부부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귀순한 김만철 씨 일가의 막내딸 김광숙 씨는 지금 수원에서 행복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배우자는 역시 귀순하여 자유의 품에 안긴 한용수 씨(서울메트로 근무).
첫 탈북자 부부인 새 삶을 찾은 두 사람의 알콩달콩 부부생활 이야기를 들어본다.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처가 뒷산에서 딴 감을 말린 겁니다. 먹어보세요. 파는 것과 달라요. 어릴 적 먹던 곶감이에요.”
한용수(40) 씨가 대화를 하다 말고 부엌에서 곶감을 꺼내왔다. 한 씨의 장인은 1987년 1월 가족 10명과 함께 탈북한 김만철(75) 씨다. 김만철 씨 가족 집단 탈북은 분단 후 처음 일어난 일로 일대 사건이었다. 한 씨의 부인 김광숙(42) 씨는 김만철 씨의 막내딸. 2000년 결혼한 두 사람은 첫 탈북자 부부다.
“회사 선배들이 아내의 어린 시절을 저보다 더 잘 알더군요. 선배들이 아내가 한국에 와서 다리 수술을 받았다기에 ‘다리 수술 받았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받았다’는 겁니다.”
광숙, 용수 씨가 사는 경기 수원시 아파트는 아늑하다. 스물네 평. 2009년 구입했다. 광숙 씨가 말했다.
“내 집 장만해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잠도 잘 못 잤어요.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로 내 집 맞나 싶었죠.”
용수 씨는 “딸이 방이 생겼다며 신나게 쓸고 닦던 게 생각난다”고 했다. 딸은 올해 중학교 2학년.
광숙 씨에게 남편 자랑을 해달라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성실하게 사는 게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 한두 명이 아주 성실하면 100명이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남편이 20년 동안 직장을 성실히 다녔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한다는데, 열심히 도와드려야죠.”
<사진> 1. 사진 속 부부의 어린 딸은 올해 중학교 2학년이다. 광숙 씨가 사진 촬영을 몹시 꺼려 최근 사진은 공개하지 못했다.
2. 1987년 탈북 당시의 김만철 씨 가족. 앞줄 가운데가 광숙 씨다.
고향땅으로 가는 기차를 모는 것이 꿈
용수 씨는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 일한다. 1996년 입사해 구로공단·방배역 등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다 2003년 승무원으로 전직해 전동차 차장으로 일한다. 기관사 면허를 갖고 있다. 3월부터 한양대 대학원에서 철도 시스템을 공부한다.
“예전에는 탈북자 특채 제도가 있었습니다. 60세로 정년이 연장돼 근속 40년을 채울 것 같습니다. 20년 일하면서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서 일해야 나중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게 마이너스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수 씨는 2010년 늦깎이로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명지전문대 철도전기과에 입학했다. 같은 학교 전기과를 2년 더 다녀 학점은행 제도를 통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털어놨다.
“통일을 이루려면 경제 교류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남북철도 연결 사업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석사 공부를 하면서 기술사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에요. 박사 공부도 해보려고 합니다. 딸이 결혼해 낳을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통일에 작게나마 기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모는 기차가, 내가 연결한 철도를 달리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일은 없습니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광숙 씨도 “남편이 모는 기차를 타고 북한의 고향 땅을 달리는 꿈을 꿔요”라고 덧붙인다.
용수 씨는 1995년 북한군에 징집됐다가 휴전선을 넘어 귀순했다.
“강원도 창도군에서 근무했습니다. 양구, 화천 맞은편 1제대 보병으로요. GOP(일반 전초) 대대를 1제대라고 부릅니다. 국군 GP(비무장지대 내 소초)에 도착하는 데 3시간 걸렸어요.”
광숙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무사 사무소에서 일하다 용수 씨를 만났다. 용수 씨는 “말 통하는 이성을 만난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고 그때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은 운명의 짝을 만난 것처럼 연애를 시작했다.
용수 씨 고향은 함북 연사군, 광숙 씨는 함북 청진시다. 어릴 적 같은 혁명유적지로 견학 간 기억, 즐겨 하던 놀이, 부르던 노래, 학교 생활 등 공유하는 추억을 얘기하며 사랑을 나눴다.
광숙 씨는 연하 남편에게 존댓말을, 용수 씨는 연상 아내에게 반말을 했다.
“아내가 부모님 사는 모습을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북한이 더 가부장적이에요. 가끔 딸이 ‘아빠, 누나한테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놀리곤 하죠.”
광숙 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다. 지난해에도 어머니, 언니 등과 함께 미국, 일본을 다녀왔다.
“돌아다니는 것을 참 좋아해요. 가고 싶은 도시가 생기면 책자, 인터넷으로 자료를 섭렵하면서 공부를 합니다. 남편이 이런 성격을 잘 알아선지 두말없이 보내줍니다. 멋진 남편이에요.”
남편 한용수 씨가 웃는다.
“결혼 잘했죠? 아내에게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