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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 국제

국제 / 중일 영유권 갈등

심상찮은 동북아 정세,
전략적으로 대응하라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중일 양국의 영유권 분쟁이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익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의 강경노선에 맞선 중국 시진핑 당총서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우리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강대국의 갈등을 그저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현명한 외교전략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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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지난해 9월 11일, 일본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이후 중국과 일본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센카쿠 분쟁의 장기화는 경제나 외교 면에서 중국과 일본 모두에 득은 없고 실만 커지는 ‘치킨게임’이다.

올해 1월 25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일본 공명당 야마구치 대표를 접견한 뒤 담화를 통해 센카쿠 열도 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담화 직후인 1월 30일, 중국의 해양감시선이 센카쿠 열도 주변의 일본 영해에 침입하였고, 2월 4일에는 중국 해양감시선 2척이 14시간이나 일본 영해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중국의 자극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쾌감 또한 강해지면서 그에 대한 대응 역시 불가피하게 되었다. 시진핑으로서도 일본과의 ‘대화 노선’을 일종의 양보라고 보는 중국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해양강국’을 목표로 삼는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서 군사적 도발에 나선 것은 일본을 동요시킴과 동시에 일본의 방위력을 탐색하려는 것이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중국이 일본 자위대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국가해양국의 프로펠러 비행기가 센카쿠 상공의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항공자위대가 긴급 발진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올해 1월에는 센카쿠 주변에서 중국 군용기의 비행이 확인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의 이번 영토 갈등은 일본 내부의 우경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 질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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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2년 9월 오성홍기를 단 중국 어선들이 센카쿠 열도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

중일 갈등 고조로 동북아 질서 변화 예고

먼저 한중일 영토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면서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경쟁이 촉발됨으로써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등장하였다. 국제관계의 영향으로 민주당 정권에서 자민당 정권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된 것은 일본 정치의 중요한 변화이다. 제2차 아베 내각은 ‘친구 내각’이라는 제1차 때의 오명을 벗고 ‘우향우 내각’으로 탈바꿈하였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노골적으로 나타난 배경에는 장기불황으로 깊어진 일본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 자신감을 상실한 일본 국민들이 중국의 부상으로 느끼게 된 위기의식 등이 숨어 있다. 극우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과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자신이 이끄는 당을 합당해 만든 일본유신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지지로 자민당의 위기의식이 고조된 것 또한 자민당이 이시하라와 하시모토보다 더한 우익 정책을 내놓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중의원 선거 과정에서 자민당은 일본이 지금과 같이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뺨을 맞고 무시당하는 것은 민주당 정권이 아시아 국가들을 지나치게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일본 국민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선거에서 우경화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베는 자민당이 민주당과는 다른 우익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정치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또한 센카쿠 영토 분쟁은 특히 주요 2개국(G2)으로 급부상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중국의 위상과 쇠락해가는 일본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는 동북아에서의 미중일 세력 재편을 예고하는 대사건이다. 올해 들어 중국은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와 파라셀 제도, 황옌다오(黃巖島·필리핀명 스카보러 섬) 영유권 분쟁에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베트남, 필리핀 등을 압박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마저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데 실패하자 중국의 팽창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국의 독주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긴장을 가져왔다. 최근 수년간 중국이 남중국해를 사실상 독식하려는 의도를 내비치자 중국의 세력 확장을 염려한 미국은 아시아 복귀를 선언하며 베트남, 필리핀, 호주 등과 군사 분야를 포함한 전방위 협력체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강력히 견제해왔다. 최근 센카쿠 분쟁에서도 미국은 센카쿠 열도가 미일 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임을 여러 차례 분명히 밝힘으로써 중국이 섣불리 군대를 동원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그러나 실제 미국이 인정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Sovereignty)이 아닌 행정 관할권(Administration)이다. 센카쿠 열도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센카쿠가 있는 동중국해와 인근 남중국해에 두 척의 항공모함을 배치하고 필리핀에 핵잠수함을 파견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펼치고 있다.

중일 영토 분쟁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 영토 갈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5년 기본조약이 맺어진 이후 한일관계는 1965년 체제의 암묵적인 틀 안에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점차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치적 우경화를 내세우면서 1965년 체제가 공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타협과 양보가 구조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일관계는 일본의 반성과 사죄 발언으로 조금씩이나마 신뢰가 형성되고 관계가 발전되어왔다. 1993년의 고노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의 신한일공동선언, 그리고 2010년의 간 담화 등에서 보여준 일본의 반성과 사죄 표명은 미흡하나마 한일관계를 발전시킨 기틀이 되어왔다. 물론 일본의 이러한 반성과 사죄 표명이 한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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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왼쪽),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1965년 체제 변화 예견 … 한미일 협조관계 위태

그러나 최근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타협과 양보가 몹시 어려워진 상황이다. 여기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중일 영토 갈등과 함께 일본 정치권을 더욱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내부적으로는 고노 담화까지 부정하는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한일 간의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정치권 내에서 한국을 배려하는 외교 노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대두되어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두 번째는 한일 간에 암묵적으로 작용하던 정경분리 대응정책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는 과거사,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한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이 문제가 다른 분야의 대립으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경분리 대응의 원칙이 존재해왔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 문제를 비롯한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을 자극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대일 대응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경제적인 쟁점이나 민간교류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제해왔다. 일본 역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더라도 안보 문제와 경제적인 협력 부문에서는 관계를 지속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한중일 영토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본 정치권은 자제를 잃기 시작했다. 한일 간에 존재하던 정경분리 대응의 암묵적인 틀을 깨고 양국 간 경제 스와프의 축소나 한류 스타의 입국 금지 등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일본 정부, 특히 외무성이 독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경제협력이나 문화교류까지 전선을 확대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본 정치권 내에서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친한파 그룹의 목소리가 약해지면서 일본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응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향후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게 된다면 한일 양국은 국제사회에서 홍보전을 펼치며 대립할 수밖에 없고, 한일 간의 정경분리 정책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이는 한일 간의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조정 메커니즘이 약화됨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한미일 협조관계의 붕괴를 꼽을 수 있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관계는 타협을 토대로 한미일 협조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한중일 영토 갈등은 한미일 협조관계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 중국, 한국과 영토 분쟁에 휩싸인 일본은 미국으로 달려가 일본 정부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자 했다. 이에 맞선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에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나섬으로써 양국 간의 외교 경쟁이 심화되었다. 결국 미국은 중립적인 태도를 표명하면서 한일 양국에 자제를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또한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질서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앞으로 한국은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정립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로 대립하면서 예전처럼 한미일 협조를 강화해나갈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새로운 한미일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일본 국내정치가 한일관계에 미친 영향’,‘동북아영토분쟁과 일본의 외교정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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