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 > 통일로 미래로
통일로 미래로 / 김점덕 부산지역회의 청년위원장
의리와 뚝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 중의 남자. 한번 결심한 일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를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 통일운동도 두말할 필요 없이 화끈하게 움직인다.
부산 토박이, 김점덕 부산청년위원장의 통일운동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산 스타일’이다.
“지역 특성상 다들 성격이 화끈합니다. 일을 시작하면 계산하고 따지는 것 없이 제 일처럼 나섭니다. 한편으로는 질문도 많고 반대 의견도 많습니다. 그래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모두 한마음이 되기 때문에 부산에서 일하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귀공자를 연상시키는 말끔한 외모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김점덕 부산청년위원장은 젊은 시절 육군 하사로 제대한 후 평생 조국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애국청년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을 줄이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등 나라의 화합을 위해 애쓰던 그가 이제는 남과 북의 화합에 이바지하고 있다.
토론회가 바꾼 대학생들의 통일관
그의 활동 무대는 청춘과 낭만의 상징인 대학 캠퍼스. 개인주의 문화에 연애 고민, 취업 고민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과연 통일운동이 가능할까? 김 위원장은 먼저 학교 측의 협조 아래 동아리를 만들어 발판을 다지는 데 힘썼다. 각 대학 총학생회 회장들과의 모임을 거쳐 통일동아리를 만들고 학교 측과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해나갔다. 동아리방을 만들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을 주체적으로 진행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고, 지도 교수 30명을 위촉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기조연설 교수를 모시고 대학생들의 통일관을 직접 듣고 토론하는 통일토론회는 연 4회, 정기적으로 부산대, 동서대, 부경대, 동의대, 동아대, 경성대 등에서 열리고 있다. 평소에는 매달 월례회 형식으로 집중 토론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건의사항은 부산청년위원회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에 적용한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통일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있다 해도 긍정적인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경제적인 부담을 걱정하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우리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려 젊은이들을 ‘계몽’하고 싶었습니다. 인구가 1억은 돼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든든해지는데 현재는 오천만뿐이지 않습니까?”
토론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학생들의 사고방식도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통일이 된 후 북한에서 벌이고 싶은 사업 아이템’등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왔다. 김 위원장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조언했다.
“강의는 다소 경직된 면이 있습니다. 부담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사석을 자주 마련합니다. 강의를 통해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태에서 편안한 분위기가 되면 그제야 다들 자기 의견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생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통일에 대해 저도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죠.”
지역감정의 골만큼이나, 남북 간의 격차만큼이나 큰 세대 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김 위원장만의 노하우다. 마음을 열게 된 학생들은 통일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관점을 갖게 됐다. 다른 학생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통일 전도사’로 성장하는 것이다. 매달 소규모로 열리던 토론회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동서대학교에서는 700명의 학생들과 토론회를 벌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난해 5월에는 ‘생생토크 통일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치는 성과도 이루어냈다. 각 언론사에서 주목할 만큼 대규모 행사여서 더욱 완벽한 준비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통일을 위한 행복한 고생
“시간도 촉박하고 장소 문제까지 겹쳐 정말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섭외된 장소였는데 갑자기 학교 측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행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비는 쏟아지는데 집행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장소를 겨우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대학생 1200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름 그대로 ‘생생한’ 통일콘서트였습니다.”
고생스러운 일투성이지만 김 위원장의 꿈은 줄어들 줄 모른다. 하고 싶은 사업이 너무 많아 하루하루가 바쁠 뿐이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담은 사진전을 대학생들과 함께 열 계획이다.
대학생 사업뿐만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2세들과 다문화가정 2세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사업도 열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북한이탈주민 한 명이 움직이려면 경찰, 학생, 학부모, 자문위원 등 기본적으로 4명 이상이 붙어야 하고, 한번 시작하면 최소한 6개월 이상은 지속해야 하는 조건에서 전국 최초로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새로운 수업방식을 직접 준비해야 하는 등 일거리가 쏟아졌지만 매주 학생들의 영어 실력 느는 재미에 고생하는 줄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리 고생이 많다고 해도 북한 땅에서 고생하는 주민들만 하겠습니까? 그저 이 한 몸, 통일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여 통일일꾼으로 남길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저 또한 민주평통을 통해 통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청년 중 한 사람입니다. 이 기쁨과 보람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