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 > 북한 IN
북한 IN / 대중문화, 북한을 품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서 다양하게 조명
대중문화, 북한을 품다남북관계는 수년째 경색됐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북한’은 날이 갈수록 중요한 키워드로 성장하고 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조명되고 접해왔던 북한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망라해 대중문화의 주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냉전시대 종언과 함께 ‘주적’을 잃어버린 할리우드 첩보영화들이 북한을 공공의 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 외부에서 소비하는 북한이다. 반면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탈북자와 북한 특수요원 등을 소재로 한 각종 이야기와 증언을 통해 북한 들여다보기를 하고 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북한은 우리의 영원한 테마인 동시에 미지의 영역이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김수현, 공유, 하정우, 류승범, 북한 요원이 되다
1TV 일일극 ‘힘내요 미스터 김’에는 탈북 청년 리청룡(연준석 분)이 등장한다. 청룡은 먼저 탈북한 형을 찾아 헤매다 마음씨 좋은 싱글남 태평(김동완)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착하고 순박한 청룡은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공포로 인해 불을 환히 켜고 자는 습관이 있고, 극심한 배고픔을 겪었던 탓에 먹는 것을 놓고 함께 사는 어린 동생들과 싸운다. 동생들은 청룡을 통해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북한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된다.TV 주말극 ‘내 사랑 나비부인’에는 탈북 처녀 리국희(김준형)가 등장한다. 새터민 생활 4년째로 씩씩하고 부지런한 그는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국경을 넘던 중 엄마를 중국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고, 엄마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중국 브로커에게 넘겨줄 돈이 필요한 것.
년 대작 액션 드라마 ‘아이리스’나 2010년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이 북한 공작원을 비중 있게 등장시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 이야기, 영화 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연속극에서 탈북자가 주요 배역을 맡아 우리 일상에 녹아들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강현 KBS 드라마 국장은 “등장인물이 많은 연속극에서 탈북자가 한 구성원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념적, 혹은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년 ‘쉬리’, 2002년 ‘이중간첩’이 나왔을 때만 해도 북한을 다루는 영화는 늘 ‘이례적’인 것이었다. 쉽지 않은 소재이고 민감한 이야기였다. 그에 앞서 ‘간첩 리철진’이 선보이기도 했지만 코미디 장르의 특성상 북한, 간첩이라는 대상이 그리 심각하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3년 영화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최고의 청춘스타 김수현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남파된 북한 간첩 원류한을 연기한다. 2010년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돼 인기를 누린 웹툰을 영화화하는 이 작품은 원류한이 마을 사람들과 생활하며 변화하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다. 사실 그는 2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남파된 북한 최고 엘리트 요원이지만 동네 바보인 척한다.
공유는 액션 블록버스터 ‘용의자’를 촬영 중이다. 북한 최고 특수부대 출신 용병 지동철 역을 맡았다. 영화는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전직 북한 특수부대 출신 용병이 대기업 회장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채 쫓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도 북한 첩보요원 동명수가 등장한다. 영화는 독일 베를린의 불법 무기 거래장소를 중심으로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와 비밀요원 표종성(하정우), 표종성을 제거하고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해 파견된 동명수(류승범), 그리고 표종수의 아내 련정희(전지현) 등이 얽힌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다.
빅뱅의 탑(최승현)도 북한 요원으로 변신한다. 영화 ‘동창생’은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남한에 침투해 킬러로 활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명훈의 이야기다. 탑이 명훈을 맡았다.
또 김유미는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는 영화 ‘붉은 가족’에서 북한 장교 출신으로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정간첩 역을 맡았다.
년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의형제’는 ‘쉬리’나 ‘이중간첩’이 보여줬던 접근방식에서 한걸음 나아가 북한, 북한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매니지먼트사 키이스트 관계자는 “배우들에게 북한사람 역은 이제 고민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간첩이나, 북한사람이냐를 떠나서 캐릭터가 얼마만큼 매력적이냐가 배우들의 선택 포인트가 된다”고 전했다.
북한, 드라마에 이어 예능에도 등장하다
채널A는 젊은 탈북 여성들이 출연해 한국과 다른 북한의 생활상과 한국 사회에서 겪은 일화를 털어놓는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1년 넘게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탈북 여성들이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고 소개할 정도로 외국에서 봐도 이색적인 프로그램이다. 출연 여성들은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패션을 선보이며 북한에서 겪은 일상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는 없다. 제작진은 북한사람들이 작고 깡마르고 못생겼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젊고 예쁜 여성들을 출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KBS 2TV ‘남자의 자격’에서도 지난해 ‘남자, 북녀를 만나다’ 2부작을 통해 탈북 여성들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시간을 마련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명하는 탈북 여성들의 경험과 삶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다’, ‘겉핥기식이다’, ‘도움이 안 된다’ 등의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남북 간의 벽을 점차 허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방송 관계자들은 “탈북자, 북한 이야기가 많이 조명될수록 북한에 대한 이질감도 줄고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인식도 커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